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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RANTH Jan 05. 2019

나의 런던, 다시 만나길 바라.

"I hope we meet again in the near future."


2016년 어느 날 런던 어느 마켓. 

6개월간 마켓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일했던 동료가 그녀를 꼭 안고 이야기했다.


"우리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길 바라." 


그때까지만 해도 귀국에 대해 별 감흥이 없던 그녀는 오열을 했다. 그리고 워털루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범벅이었고, 집 현관문을 열자 그 모습을 본 집주인 언니가 요리하다 말고 키친타월을 급히 들고 나와 그녀의 얼굴을 뒤덮은 눈물을 닦아주었다고 한다.


지금 내 앞에서 함께 햄버거를 먹고 있는 플랏 메이트가 담담히 뱉어내는 지난날의 이야기에

내 목구멍도 턱 하니 막혀버렸다. 



"언니 남일이 아니야. 이틀 뒤면 언니 일이야. 허탈감에서 회복하려면 시간 엄청 걸려."


"맞아. 집주인 언니도 그랬고, 내가 런던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랬어. 보통 머문 기간의 두배는 걸린데. 

그래도 너는 이렇게 떡하니 너무 가까운 미래에 다시 왔잖니. 와서 다시 그 친구들과 일도 하고 있고."


"맞아. 내가 그렇게 돌아오고 싶어 했던 런던인데, 돌아와서 다시 일상에 치여서 돈 번다고 살다 보니 초심을 잃어가는 내가 보여. 그래서 언니를 보고 있으면 다시 마음을 다 잡게 돼. 정말 이곳에 돌아오려고 했던 이유를 기억하고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는데 쉽지는 않은 거 같아."


시끌벅적한 동네 펍에서 길어진 진지하고도 슬픈 이야기에 결국 햄버거를 다 먹지 못했다.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자는 말이 하루 종일 내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메아리처럼 울렸다.



아침에 갑자기 눈을 번쩍 떠서는 오늘이 공항 가는 날인가?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날짜를 몇 번이 곤 확인하고는 아직 이틀이 남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을 했다. 귀국이 임박하자 한국에서 나의 안부를 묻는 연락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복직 부서가 결정되었다는 사무실의 통보까지 받게 되자 이제 정말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싶었다.


"날씨가 언니를 잘 보내주려고 하나보다."


가을에 접어들고 나서부터 런던은 해가 늦게 뜨고, 일찍 해가 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여름의 따사로운 햇살 대신 런던스러운 회색의 하늘을 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로 아침부터 햇볕이 쨍하고, 기온도 제법 봄처럼 따뜻하다. 내가 좋아하는 내 방 큰 유리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옷장을 열고 6개월 동안 쌓아온 보물들을 하나둘씩 가방과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포토벨로 마켓에서 산 중고 찻잔, 아침 등굣길마다 워털루 역 앞에서 얻은 무료 신문들, 박물관이며 미술관이며, 영화관이며, 뮤지컬 극장이며 쏘아다니며 모은 엽서와 입장권, 여행지의 기억을 소환하는 유럽 여러 나라의 마그넷들, 고서를 취급하는 서점을 몇 군대를 돌고 돌아 마침내 발견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해리포터 중고책 몇 권, 스콘은 가져갈 수 없으니 잼이라도 가져가야겠다 싶어 마트에서 왕창 사온 영국 잼들, 플랏 메이트와의 추억이 담긴 1파운드짜리 감자칩 몇 봉지, 그리고 나의 노력과 열정이 고스란히 기록된 학교 수업 자료들, 주말 런던 마켓을 몇 번이고 찾아가면서 사다모은 빈티지 포스터와 지도, 커피보다 차를 좋아하는 나라서 학생 할인받아서 잔뜩 사 온 홍차들.


누군가가 보기엔 참으로 쓸데없는 것만 가져온다며, 영국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브랜드 옷이라든지 향수라든지 하다못해  B사의 명품 스카프라도 사 오겠다고 할만한 내용물들이었지만, 그런 것에는 별 관심도 없고, 런던을 통째로 가지고 돌아갈 수 없으니, 내 추억을 회상할 물건들이라도 잔뜩 가져가는 것 같아서 뿌듯했고 참으로 나다운 물건들이었다.



런던에 올 때 가져온 짐은 백팩 하나, 기내용 캐리어 하나, 28인치 수화물 캐리어 23kg 하나가 전부였다, 집주인 언니가 짐이 정말 그것밖에 없냐고 물을 정도로 단출했지만 6개월을 사는 동안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6개월이 지나 이곳을 떠나려고 보니, 수화물 캐리어는 유리병에 든 잼 무게만 해도 어마해서 이미 23kg을 한참이나 초과, 추가금을 내야 하는 것은 뻔했고, 책과 신문도 너무 많아서 택배로 붙였는데, 너무 무거워서 택배 기사님 조차도 제대로 들기를 버거워하셨다. 그리고 그 비용도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하지만 돈을 지불해서라도 그렇게 이곳의 모든 추억들을 다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 마음이었고, 그래도 부족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짐만 싸기엔 너무 아까운 날씨였기에,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산책을 갔다. 집 가까이에 있어서 살면서 몇 번을 갈 줄 알았는데, 가까웠기 때문에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런던의 주요 관광지. 일 년 전에 여행으로 왔을 때 내가 런던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저 여행 와서 좋다고 잔디에 앉아서 노트에 "너무 행복해"라고 쓰던 내가 여기에 있었다. 다시 그 자리에 앉은 오늘은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저 머리 위로 수없이 지나가는 비행기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봄, 여름, 가을 세 번의 계절을 이곳에서 지냈다. 그 계절의 기억들이 하나둘 파란 하늘 저 너머로 사라져 간다. 기억의 무게만큼 빛나는 노란 기억의 조각들이. 미래의 어딘가에서 그 계절에, 그때의 기억과 또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저녁엔 플랏 메이트와 집주인 언니와 마지막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워낙 바쁜 두 사람이니 귀국 전날 밤엔 함께 하지 못할 거 같아 하루 일찍 식사를 하기로 했다. 뭔가 코끝이 찡한 밤이 될 줄 알았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이야기들, 평소와 다름없던 웃음들, 처음 집주인 언니를 만나 계약하던 날처럼 함께 걷던 런던의 밤거리를 이리저리 쏘아 다녔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선 늘 그랬듯 신발장 앞에서 굿 나잇 인사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 보았지만 눈이 쉽사리 감기지 않았다.

계속 여기에 있을 것만 같은데. 꿈일 거야. 그래서 덤덤한 거야. 새벽 세시가 되도록 잠이 오질 않는다.

오늘내일은 뜬 눈으로 지새울 수 있을 것 같다.



귀국 전날.  오늘은 바깥이 깜깜하다. 비가 온다. 


"언니 간다고 런던이 우네 울어. 내일은 무지개가 뜰 거예요!"


마지막 날이니, 부지런히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내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멈춰서 버렸다. 어디론가는 가야겠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 조차도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 어느 장소에서 마지막 하루를 장식하고 싶은 건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은 잔액이 떨어진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그 남자와의 추억이 잔뜩 남아있는 타워브리지로 향했다. 내일이 귀국인데 연락 한통 없는 그가 야속했지만 이곳에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지난 9월의 설레던 흔적을 따라 걸으며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너, 세인트폴 성당을 지나, 트라팔가스퀘어까지 오게 되었다. 어디로 갈지 몰랐지만 결국 나의 마음은 자연스레 나의 꿈이 시작된 이곳으로 이끌었다. 



광장 초입이 보이기 시작하자 바이올린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그다! 그 바이올린 버스커다! 한 달 전 그의 연주를 처음 듣고 너무 감동받아서 계속해서 그와 마주치기를 바랐는데,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이렇게 선물처럼 마주치다니! 내가 런던에서 가장 사랑하고 추억이 많은 장소인 트라팔가스퀘어에서 듣는 마지막 콘서트. 오늘도 이곳을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연주다.


런던에서의 마지막날 마주친 그의 연주 (NO PERMIT - WITH OR WITHOUT YOU)


내가 이 버스커를 처음 만났던 날.(NO PERMIT-CANON IN D)


일 년 전 여행으로 런던에 왔을 때, 첫날 이 광장에 서서 바라본 아름다운 이 도시와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고, 못다 이룬 공부의 꿈을 이곳에서 이루겠노라며 다시 돌아오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여행 마지막 날 무리한 일정으로 지쳐 쓰러져 잠들며, 오늘 밤 템즈강에서 맥주 못 마신 게 아쉽지만 다음에 또 와서 꼭 할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잠들었는데. 정말 다시 돌아와서 매일매일 그곳을 지나다니게 될 줄도 몰랐고,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들을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많이 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덤덤하다.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도 덤덤하다. 너무 익숙하고 매일 보던 거리들이라 내일 또 볼 거 같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하루 이틀이 지나 이 풍경들이 눈에서 안 보인다는 게 실감이 나면 그때 울 수 있겠지. 내일 또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목일 메일까.



나의 꿈이 시작된 그곳에서, 꿈이 실현된 그곳에 서서 또 한 번 다짐을 해본다.

고마웠다고. 다시 와서 기뻤고, 처음 도착한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좋은 사람들, 좋은 일들,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만 마주치게 해 줘서 행복했다고. 


내가 이 멋진 도시에 살았다는 것, 이 아름다운 도시에 서른 살 나의 인생 한 페이지를 남겨두고 갈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육 개월이라는 시간. 봄, 여름, 가을 세 번의 계절만큼 나도 훌쩍 성장했다. 목표했던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이루었다고.


그리고 다시 또 돌아오겠노라고. 무엇이든 되어서.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어서. 

그것이 공부이든, 여행이든 새로운 도전이든 무엇이든 되어서. 그땐 꼭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런던 생활 174일째로 종료.


참던 눈물이 마침내 쏟아졌다. 아늑했던 우리 집. 내가 좋아하던 내 방 유리창으로 보이는 하늘을 다시 보고 또다시 보고 몇 번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일찍 일어난 플랏 메이트와 집주인 언니와 "안 믿겨. 안 믿겨." 하며 부둥켜안고 울어봐도 믿기지 않았다. 


"언니 그리고 내 동생. 고마웠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이 말 밖에 못하겠어요."


"너 이 정도 울었으면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어. 겨울 3번만 지나면 다시 돌아올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


"언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요. 가는 게 아니라 다시 갔다 오는 거 알죠? 언니 없는 저 방이 얼마나 휑할까 생각하면 너무 슬퍼요. 하지만 곧 다시 올 거니까! 서로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그렇게 워털루 따뜻한 집과 가족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무료 신문을 나눠주는 지하철 역 앞 아저씨를 지나, 먼지로 가득한 런던 지하철을 타고 내린 어느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브라질 친구 부부를 만났다.

친구들이 준비한 작은 선물 사이에 적힌 편지를 보고 감동받아서 또 울고. 눈이 퉁퉁 불어 오른 채로 도착한 공항에서 친구들과 런던과 그리고 나의 지난날들과 진짜 작별 인사를 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고, 후회 없는 시간들이었다. 조금 더 빨리 오지 못했던 것이, 더 오래 머물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반년이었다.  나의 이십 대가 굴곡이 있지 않았다면, 내가 이곳에서 누렸던 모든 순간들이 안타까울 정도로 소중한 것인지 몰랐을 것이기에 지난날 나의 시간들에도 감사한다. 


물론 나는 모아 온 돈을 쓰러 왔고, 직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이루지 못했던 공부가 주된 목적이었으니 이곳의 치열한 경쟁사회에 깊숙이 들어가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이야기들만 들어서 그 모든 시간들이 더 행복했다고 말할 수도 있고, 현실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살던 이들이, 런던에 정착이 꿈인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런던의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위해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그리고 포기해야 하는지, 나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조금은 알고 돌아간다. 



여태 그런 적이 없었던 비행기는 5시간이나 지연이 되어 나를 런던에 오래도록 묶어두었고, 덕분에 이륙 후 무지갯빛으로 물든 멋진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일은 무지개가 뜰 거라고 했던 플랏 메이트가 말한 그대로 말이다.


언젠가 2017년을 시작하던 새해에 읽은 운세에서

 "지구 반대편에 당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구절에 가슴이 뛴 적이 있었다.


그것이 런던 일지, 새로 사귀게 될 친구들 일지, 런던에서 만날 가족 일지, 아니면 그렇게 찾던 운명 같은 남자일지, 뜻밖의 다른 무엇일지 궁금했었다. 


마침내 2017년 서른의 어느 날. 


지구 반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나 자신"을 만났다.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희망 가득한 새해맞이하셨나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2019년 1월 1일입니다. 새해에 2년 전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면서 또 한바탕 감동하고, 마지막 편에 쓰겠지만 그 후에 일어난 변화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원하는 대로 잘 걸어가고 있구나 생각이 듭니다. 올해도 배우고 싶은 것, 가고 싶은 나라들, 하고 싶은 것들 가득 일기장에 적어놨는데, 벌써 기대가 됩니다. 다음 주 이 매거진 마지막 편으로 또 인사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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