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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RANTH Dec 30. 2020

브런치가 만든 글 쓰는 공무원

<나는 9급 공무원입니다. 출간>

공무원 신분으로 글쓰기는 쉽지 않다.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작가 겸직을 신청할 때, '나는 겸직으로 인해 공무원으로서 직분을 망각하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체의 행위나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는 문구 아래에 서명했다.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일이지만, 글을 쓸 때마다 책임감이라는 무게에 짓눌리곤 한다.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써 놓고도 스스로 검열을 몇 번 하고 나면 결국 재미없는 무미건조한 글이 되어있다. 어찌 되었든  본업이 우선되어야 하기에, 굴러들어 온 기회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는 건 글쓰기를 통해 하나 둘 얻는 기회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월에는 탈잉에서 <브런치로 글쓰기> 강의 제안이 왔다. 스테르담 작가님을 비롯한 브런치에서 한 번씩 본 작가님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담당 매니저와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강의를 계획했다. 아직도 주변에 브런치가 뭐야?라고 묻는 이들에게 부산을 대표하는 브런치 글쓰기 강사가 되어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보았다. 약 한 달 간의 준비 끝에 수강생 모집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졌고, 사무실에서 느끼는 긴장감도 심상치 않았다. 결국 이미 신청한 수강들에게 취소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할 수 없었다. 비상시국에 개인 강좌를 진행하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고, 자칫 강의에서 확진자라도 나오면......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망신을 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8회 브런치 공모전에서 탈잉의 참가를 볼 수 있었고, 아쉬움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다 차려놓은 밥상을 왜 먹지를 못하니......)


2019년 6월쯤. 첫 책의 인쇄를 기다리며, 브런치에 다음 연재를 시작했다. 23살에 시작한 공직생활을 뒤돌아보며 누군가가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일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때 꿈은 원대했다. 


2020년 공직생활 10년이 되는 시점에 맞춰 기념비적인 책을 한 권 내자고! 처음부터 1년간 연재를 통해 브런치북을 만들어 공모전에 참가하겠다는 계획으로 프롤로그를 올렸다. 그런데 첫 글을 올리고 얼마 되지 않아 출간 제안이 들어왔고, 그 출판사는 바로 작년부터 브런치 공모전에 참가하고 있는 웅진지식하우스였다. 


32살의 생일에 서울에 올라가 첫 책이 인쇄되는 것을 보고 벅찬 감동을 느끼고, 곧이어 파주로 달려가 두 번째 책 미팅을 했다. 이제 막 시작한 글의 목차를 제대로 만들고, 주말마다 원고를 써 내려가며 인고의 1년을 보냈다. 열정적인 담당 에디터님은 부산까지 오셔서 초고의 편집 방향을 잡아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크리스마스에 맞춰 책이 인쇄되어 내 손에 왔다. 



<서른의 휴직>이 공무원 조직에서 슬럼프를 겪으며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난 여정을 기록한 책이라면, <나는 9급 공무원입니다>는 나의 20대 전부인 공직에서의 10년 동안의 시간을 담았다. 9급 때 마냥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조직이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하나 둘 이해되기까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세금만 축낸다고 욕먹는 직업이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써준 "잘하는 것은 없지만 거의 모든 일을 합니다. 어쩌면 먼지 같고 알고 보면 공기 같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문구처럼. 매년 많은 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지만 정작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도전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나 역시도 그랬고, 여전히 '이런 일까지 하나?'라는 상황을 마주한다.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걸 깨우쳐가는 요즘. 나의 경험이 이제 막 조직에 첫발을 디딘 이들에게, 혹은 공무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더없이 뿌듯하겠다.


5년 간 브런치에서 보낸 시간들은 그저 일개 평범한 말단 지방직 공무원으로만 살 수도 있었던 나에게 멋진 출판사와 플랫폼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조직 밖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더없이 소중했던 시간들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기에 굉장히 보람 있다. 그 덕분에 최근엔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로는 영국은 물론 세계 랭킹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학원 석사 과정에 합격하게 되었다. 행정학 전공에, 말단 공무원 경력이 전부인 내가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과정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 브런치를 통해 쌓은 경력들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personal statement 내용 절반이 브런치를 통해 성장한 이야기다. 


2015년에 이 공간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이어가며 하나둘 글쓰기 근육을 키워갈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들. 갈수록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공무원 작가들이 많고, 소속도 직렬도 굉장히 다양하다. 그들이 브런치에서 재능을 꽃피우고, 조직 밖의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조직에 좋은 영향으로 돌아온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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