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주부를 하기엔 심심하고 풀타임은 부담스러운 나
협력 강사 day 60, 12주 동안의 근무를 마치고 드디어 브런치에 글을 쓴다.
우선 나에게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사회에 발을 내딛는 것은 늘 긴장되고 두려움이 수반되기 때문에 이 일을 한 학기 동안 무사히 끝마친 나에게 칭찬을 듬뿍 해주며 글을 시작한다.
그동안 나는 주로 전업 주부와 파트 타이머 사이를 저글링 하듯이 오가는 중간자로 살아왔다. 물론 1년짜리, 3년짜리 풀타임 job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그때 나는 살림과 육아에 대한 이중책임이 버거웠다.
그런 나에게 딱 맞는 일은 역시 파트타임인 것 같다. 밖으로 나가 적당히 사회 공기를 마시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적당히 살림하며 아이들을 맞이하는 양다리 삶이 나에게 딱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쉽게 되지는 않았다. 내가 일하고 싶은 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적당한 일'을 찾을 때까지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다.
잠시 '과거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내가 원래 하던 일은 대학 강의다. 어린이집 교사가 되고자 하는 성인 학습자들을 위한 온라인 강의를 만들었다. 이들에게 이론 강의를 해주었고, 어린이집에서 실습할 때 찾아가서 실습 지도를 했다.
그때, 나는 아이들과 직접 대면하는 그들이 오히려 부러웠다. 나도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강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하던 대학 강의를 그만두었다. 다시 전업주부로 살면서 숨 고르기를 했다. 그리고 구직을 했다. 구직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아니, 나의 선입견은 나에게 말했다.
'야! 대학 교수라는 말까지 들었던 얘가 무슨 어린이집 선생님이냐. 그리고 넌 이미 나이가 많아. 너를 어디에서 받아주겠어.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냐?'
이런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고 싶은 열망은 계속되었다. 틈틈이 유치원 자원봉사자도 지원했고, 중학교 시간강사로도 일했다. 아주 어린 아기들을 돌보고 싶어 영아전담 어린이집 교사로도 지원했었다.
하지만 사람들도 나의 내면의 소리와 같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아주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 이력서를 받아주는 현장은 드물었다.
그러던 중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내 눈에 들어온 공고. '초등학교 협력 강사 채용'이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서류를 준비해 제출하였으며, 다소 낯선 방식의 면접이었지만 줌 온라인 면접도 통과하여 협력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내가 담당한 반은 초등학교 1학년 두 반이었다. 메인으로 들어가는 반이 있었고, 다른 한 반은 주 4회 수학 시간에만 협력하였다. 각 반에서 나는 선생님이 지정해 주신 담당 아동을 돕는 일을 하였다. 선생님의 지도를 따르지 않거나 집중을 못 하는 아이도 있었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뒤처지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밀착하여 아이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아이들과 선생님, 수업 내용, 학교 사람들, 협력 강사인 나 자신을 남기고 싶었다. 매일 관찰하고 기록해서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며, 나만의 숨은 목적을 가지고 일했다.
나는 나를 위해 했던 기록을 이제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로 승화시켜보고자 한다.
브런치를 그 통로로 택한 것은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주부로 지내다가 사회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었듯이, 보다 공식적이고 보다 문턱이 높은 글쓰기 공간인 브런치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협력 강사로 일하며 엿볼 수 있었던 1학년 교실 이야기, 담당한 아이의 변화와 성장 이야기, 운 좋게 만난 나의 이상형 같은 1학년 선생님 이야기, 같은 일을 하였던 동료들 이야기를 내 마음이 가는대로 쓸 준비가 이제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