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요

자유와 행복을 꿈꾸는 아이들은 어디에

by 아마르기

'한국학원'은 내가 최초로 다녔던 학원의 명칭이다. 강남 서초에 있는 대형 학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방학 특강으로 수학의 정석을 수강했다. 장의자에 2-300명의 학생들이 빽빽하게 앉아있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강의실 앞쪽에 앉기 위해 미리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학생들의 학업 열기가 대단했다.


강사의 강의력이나 수업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혼자 공부할 때와 느낌이 달랐다. 핵심을 파악해서 알려주니 공부가 더 잘 됐다. 무엇보다 학업에 열의를 품은 학생들 틈에 앉아 있는 것 자체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이것이 약 30여 년 전의 학원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하림이는 주로 집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 하지만 고입에 가까워지면서 남들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불안해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대치동 국어 선생님을 섭외하여 온라인 수업을 신청했고 수학 선행을 위한 학원도 등록했다. 아이를 너무 몰아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댔다. 나는 하림이의 스케줄을 학원으로 더 채워나갔다.


학원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요


한 날 학원 숙제가 너무 많다면서 하림이가 했던 말이다. 보통의 학원에서는 세 권의 문제집을 두 달 만에 끝내도록 한다. 선행학습을 위해 기본 개념서와 유형서를, 현행학습을 위한 심화교재를 내준다. 하림이는 평소 혼자 공부할 때보다 두 배, 세 배의 속도를 내야 했다. 노예처럼 끌려가는 느낌이 들만 했던 상황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비싼 학원비를 내가며 기껏 학원을 보내주었더니, 하는 말이 고작 이 정도인가 싶은 계산적인 엄마의 본능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나는 주체성과 주도성을 중시하는 엄마라고 스스로 착각하며 살았던 것인가? 무엇이 아이가 자신을 노예로 여길 만큼 힘들게 했던 것일까?


나는 하림이의 말을 곱씹어보면서 비슷한 맥락의 다른 언어가 생각났다. 대치동 선생님이 하림이에게 해주셨던 말씀이다. 대치동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에 비해 하림이의 공부 양이 부족하고, 잘못된 방식이라 생각하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림아, 그렇게 행복하게 공부하면 안 돼.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나는 아이가 주도적으로 학습을 계획하고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이의 학습동기가 떨어질 것 같아 염려되었다.


물론 그 누구도 하림이와 같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학원의 노예로 만든 적은 없다. 성적 향상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부분 자발적으로 학원에 다닌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에서 즐거움이나 쾌락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성적 향상이 되지 않아 쓰라림을 느끼는 때가 더 잦을 수 있다. 대입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통을 참으며 공부하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는 현실이다. 인내하는 자에게 마지막의 승리, 대입 성공이라는 황금열쇠가 주어진다. 선생님도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대입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학생생활을 희생시키듯 살았다. 잠을 줄여가며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으려 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행복감보다는 고통과 고뇌의 감정으로 인내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의 문이 나를 찬란한 어른의 세계로 안내할 것처럼 보였다. 현재를 희생할 가치가 있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하림이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내가 대학을 통해 얻은 것들을 자랑스럽게 내어놓을 게 없어서이기도 하고 대학 이후에도 경쟁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림이가 막연하게라도 꿈과 목표가 있었다면 공부를 짐으로만 여기지 않았을 것 같다. 대학간판이 영광의 금메달이라고 행복한 착각이라도 하게 내버려 두었어야 하는 걸까? 아이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



아이가 고3이 되어 이제야 깨달은 것은 바로, 내가 아이보다 단 한 걸음도 앞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했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수집해 내가 먼저 아이의 꿈을 그렸다. 아이가 혼자 그려야 할 그림을, 내가 대신 아이의 손을 잡고 그려주려 했다.


아이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게 내버려 두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아이의 미래를 다 아는 것처럼 온갖 유의사항이 가득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아이를 앞에서 끌고 가려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그 누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대학 그 너머까지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이 있다면 현실의 어려움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니다. 아이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늦기 전에 아이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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