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입시제도, 그것은 신인가
드디어 하림이의 수시 지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족회의, 상담, 입시 정보 수집 등 매일 입시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하림이는 원했던 대학에는 갈 수 없다. 성적이라는 요건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순리다. 경쟁을 통해 합격자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지금껏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라고 해 온 이야기가 현실의 벽 앞에서 허울 좋은 소리였던 것 같아 마음이 허하다.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가고 싶은 심리는 어쩌면 생존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과 학과 서열이 명확하고 그 이후 취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가 어떻게 그 영광의 자리에 오르느냐 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다. '공정한 입시제도'가 사회의 주요 쟁점인 게 당연하다.
엄마, 입시제도도 하나님이 만든 거예요?
내신, 수행평가, 모의고사를 모두 챙기려 애쓰던 하림이가 한 날 툭하고 내뱉은 말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입시제도를 만들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느냐 하는 불만이 담긴 말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배워온 하림이로써는 이 숨 막히는 입시제도도 하나님이 주신 규례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순종하고 따라야 하는 것인지 토로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역시 K-입시제도
나는 이번에 하림이가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찾기 위해 컨설팅을 받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입시제도로 전국의 아이들을 평균 내신등급으로 완벽히 줄 세우기 할 수 있다. 최근 3개년 동안 특정 대학, 특정 학과에 합격한 학생의 성적을 알 수 있다. 50% 컷, 70% 컷은 대학 어디가 라는 사이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합격한 아이의 점수 또한 교육청이나 학교 선생님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에서 조회할 수 있다. 따라서 하림이의 내신 등급을 기존 데이터에 대입하면 합격 여부를 예측할 수도 있다. 단, 지원자 간 상대평가이므로 그 결과는 끝까지 알 수 없다.
내신 성적 외에도 생기부를 이용한 정성평가를 하는 학생부종합 전형이 있다. 단지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진정으로 교과를 탐구하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한 아이를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적이 좀 안 좋아도 원하는 대학에 학종으로 갈 수 있을까? 기대는 많이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 대학교수, 입학사정관 등등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결국엔 '내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종으로 생기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내신은 학생이 교과과정을 얼마나 충실히 따라왔는지를 판단한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은 산출된 내신 등급이나 성적 변화 추이, 주요 과목의 성적에 더 큰 무게를 둔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내신 성적이 높고 생기부 내용까지 풍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간다는 보장이 있을까? 원하는 대학이 상위권 대학이라면 대답은 '아니다'. 대체로 수능 최저라는 요건이 하나 더 추가된다. 고등학교 내신만으로는 지원자 간의 실력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준화된 수능 시험을 일정 등급 이상 받았을 때 합격 가능하다.
내신 성적, 생활기록부, 수능점수라는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는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제도로서는 빈틈이 없어 보인다. 이중삼중의 장애물을 만들어 통과한 아이들만 영광의 메달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마치 하나님이 만든 것처럼. 하지만 과연 완벽할까?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을까?
빈틈을 찾아서
학생부 종합 전형의 주요 평가자료인 학생의 생활기록부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일부 수행평가 과제는 부모나 컨설턴트 등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업 시간 내에 학생이 직접 수행하는 과제가 아닌 이상 그렇다. 학생이 스스로 하지 않고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 또한 생기부 작성도 자기 평가라는 명목으로 학생이 초안을 작성하여 교사에게 제출한다. 이 또한 외부의 개입이 쉽게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내신 등급을 기준으로 선발되는 전형의 허점은 바로 학교별 수준 차이다. 아무래도 특목고, 자사고와 같이 비평준화된 고등학교의 경우 그 안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 반면 비학군지 일반고에서는 보다 수월하게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입시 원서에 학교 구분이 되지 않도록 블라인드 처리한다고 공식적으로는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육과정이나 학교 인원, 점수의 표준편차 등을 통해 지원자의 소속학교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고에서는 1학년 때 과학Ⅱ과목, 2학년에는 심화과목, 3학년에는 AP과정과 같이 특수하게 교육과정이 편성되어 있다. 외고에서는 외국어 수업 시수가 주요 교과보다 높게 편성되어 있고 자사고는 많은 경우 해당 학교만의 특수한 교과목이 편성되어 있다.
학교 배경이 드러나는 순간, 학생 개인의 역량과는 무관하게 특정 고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치성 평가가 개입될 수 있다. 이쯤 되면 겉으로는 블라인드 작업으로 공정을 기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모두가 알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를 표 내고 있는, 즉 모두가 '공정한 척' 속고 속이는 상황인 것이다.
대한민국 입시제도는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욕망과 허점이 숨어 있다. 그래서 때로는 제도가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 입시제도도 하나님이 만든 거예요?'라는 하림이의 질문에 대한 글을 쓰기가 가장 어려웠다. 한참을 붙잡고 고민했다. 선과 악이 맞부딪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면 하림이의 질문은 입시제도의 정당성을 묻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제도의 문제점은 입시 당사자인 본인이 이미 잘 알고 있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불완전한 체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의 질문이 아니었을까. 대입을 단지 인생의 성공이나 결승점으로 보지 않기에, 하림이는 더 고민하고 더 고뇌하는 것 같다.
모순 가득한 세상에서 어떠한 마음가짐과 자세로 이 길을 걸어갈지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그 숙제를 해나가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가슴 아프지만, 끝까지 옆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