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대화

K-여성 이야기 3

by 아마르기



밤 11시.



띡띡띡 띡. 소리를 내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자는 척할까? 나가서 인사할까?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일어나서 나가본다.




"여보, 왔어요?"


내 목소리가 작았나? 아무 대답도 없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여보, 잘 갔다 왔어요? 왜 말을 안 해요?"



이 정도쯤이면 그냥 나는 그에게 그냥 투명인간인 것이다.


갑자기 내가 여기에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 빈 도시락을 꺼내어 놓는다.


안방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나를 지나쳐서 남편은 안쪽 화장실로 들어간다.


나는 얼음이 되어 서 있다가 겨우 "왜 인사도 안 하지?"라고 내뱉고서는 내 자리, 아이들 옆으로 들어와 눕는다.


그도 바로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언젠가부터 그와 나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나를 찾기 때문에 시작되었는데


언젠가부터 이게 나에게 더 편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가 내 옆에 있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또한 내가 그의 옆에 가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점점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마치 만악의 근원인 양 그는 늘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말로 옳은 일인지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 서로의 존재가 대체가능하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인정한 것 같다.


우리는 각자 맡은 바 엄마, 아빠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죽을 때까지 이 계약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처럼


그렇게 연기하며 살고 있다.


처음에 그에게서 사랑은 머리로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어느 정도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가슴 떨리는 사랑은 이제 0.1%도 남지 않았으며


지금부터는 의지와 노력으로 계약을 파기하지 않을 정도로만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기한이 아이들 대학 갈 때까지인지, 취직할 때까지인지 혹은 시집갈 때까지인지


아니면 내 나이 60이 될 때까지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그런 상태로 가족이라는 형식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당위성 하나로 버티기에는


나의 의지가 너무 약하다. 신에게 기대어 나를 어딘가로 이끌어주겠지 하는 믿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 인생을 남에게 맡기는 것 같아 오히려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그는 나의 내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나의 내면, 나의 삶과 미래에 대해서 그는 어떤 관심이 있을까?


지호 아빠는 지호 엄마랑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위 글을 쓴 지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는 살갑게 맞이하는 사이는 아닙니다.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은 가끔 겨우 눈만 마주쳐 인사합니다. 밥, 애들 교육, 생활비 등 꼭 필요한 대화만 합니다. 오랜 정서적 메마름은 정서적 허기로 이어졌고 몇 차례 공황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죠. 그 과정을 지나왔고,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아주 많이. 이렇게 글을 하나씩 꺼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반드시 가깝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에요. 가족이란, 부부란 어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혼돈되기도 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우리의 시간은 다를 수 있다는 점, 그 진리를 깨닫고 되뇌면 더 이상 요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족은 가장 가깝지만 가장 알 수 없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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