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여성 이야기 2
"오빠가 약속했잖아! 지금 와서 모른 척하면 어떡해!!"
동서가 또 도련님한테 소리를 지른다. 명절 당일 오후가 되면 얼굴이 어두워지는 동서. 처음에는 둘 사이가 많이 안 좋은가 생각했다. 시댁이 불편하고 서로 사이가 안 좋으면 더욱 이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얼마나 싫었으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온 시댁식구가 있는 앞에서 둘이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하며 첫 대면했을 때의 사건이 떠올랐다.
시부모님은 읍내 쌀가게를 운영하시며 육 남매를 기르셨다. 내 남편은 위로 누나 셋, 아래로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이 있다. 아들로 태어난 내 남편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을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이 둘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셨던 시어머니는 기어코 딸을 하나 더 낳은 후 아들을 낳으셨고 그렇게 두 아들을 중심으로 가족이 완성되었다. 두 아들은 장성하여 하나는 서울대, 하나는 지방대를 나와 공무원이 되었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자고 쓴 것은 아니니, 바로 동서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결혼한 지 10년째 되었을 때 남편의 남동생에 대한 결혼추진이 시작되었다. 이제 막내만 보내면 소원이 없겠다, 막내만 처리하면 손을 턴다는 시어머니의 하소연이 아직도 귀에서 쟁쟁하게 들린다. 시어머니와 그녀의 딸들은 명절 때마다 작은 아들을 닦달하였고 결국 속도위반으로 막내 도련님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여쁜 서울 아가씨와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막내 도련님은 새 시대의 남성으로서 가부장적인 가장이 되진 않겠지 라는 환상을 품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환상이었던 것 같다. 바로 그날, 모든 것이 한꺼번에 폭탄처럼 터져버렸다.
"아! 씨! 미친년!"
시댁 행사로 시누이들과 조카 등등 모두 한 자리에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 우아하게 근처 문화유적 답사를 하려고 이동했던 참이었다. 모두들 막내 도련님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굴에 생채기가 난 채로 주먹을 불끈 쥐고 씩씩거리며 나타난 것이었다.
"어! 무슨 일이야? 왜? 왜?"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련님을 붙잡고 물었다.
"아이씨! 차에서 안 내리겠다고 난리잖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안 온다고 안 내리겠다고 해서 내가 그럼 아기만 데리고 간다고 하니까 절대 못 주겠다고 버티는데. 아씨! 그러더니 막 할퀴는 거야!"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자초지종 상황을 큰 소리로 내뱉는 도련님. 주변의 사람들도 지나가며 위아래로 훑는다. 대식구가 도련님 둘러싸고 있는데 뒤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바로 결혼 2년 차 새댁, 동서였다. 꽥꽥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그녀도 화장이 뒤범벅이 되도록 울면서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오빠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잖아! 애기도 다칠 뻔했고 말야! 지금 왜 거짓말하는 거야? 어?"
상황이 커지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말은 둘 다 성립할 수 없는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서서 관찰하던 우리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시댁 식구들, 즉 피가 섞인 사람들과 나, 사위와 같이 피가 섞이지 않은 인물들로 나뉘었다. 일단 그들을 떼어놓아야 했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분리되었다.
나는 그녀의 편에 서야 할 것만 같았다. 배경은 모르지만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래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녀와 아기를 데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둘째 시누의 남편도 나와 함께 이동해 줬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울지 말고요. 아기가 놀래니까 아기부터 달래줘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나도 어떤 사람을 위로하고 조언해 줄 정도의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맨날 이런 식이에요. 식사만 하고 올라간다고 했는데 또 여기에 그냥 끌고 오고. 가자고 하니까 폭력을 휘두르고 그래요. 저는 임신했을 때부터 맞았어요. 신랑이 분노조절이 안 돼서 정신과 상담도 받는데 병원도 안 가려고 하고. 지금 여기서는 안 그러죠? 집에 있으면 너무 무서워요. 핸드폰도 뺏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욕도 많이 해서 아이가 들을까 봐 귀를 막아주고 그래요. 내가 결혼을 안 했어야 했는데... 흑흑흑... 아기가 생겨서... 결혼을 안 했어야 했는데..."
동서는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옆에 서 있던 둘째 시누의 남편은 잔잔한 목소리를 위로하려고 했다.
"이 나쁜 놈! 사람을 왜 때려? 미친놈이네. 나쁜 자식!"
이렇게 우리가 동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달래주는데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가식을 감지했다. 무언가 어색하고 꾸며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평소에 남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본 적이 없었고,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나도 어색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뭔가 이상했다. 한참이 지나도록 동서는 자신이 당해왔다는 하지만 아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하소연을 반복했고 나는 잠시 동태를 살피기 위해 다른 편으로 가봤다.
"동서가 의부증이 있어..."
도련님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편으로 갔을 때 둘째 시누가 나에게 살짝 귀띔을 한다.
"동생 직장에 여성 직원들이 대부분이잖아. 그래서 불안한지 매시간 전화하고, 전화 바꾸라고 하고... 일을 못 하게 하나 봐. 어디 저녁 식사도 못 하게 하고. 그래서 의부증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치료도 거부하고 그러나 봐."
그렇지. 역시 팔은 완전히 안으로 굽는다. 그들은 자기 동생의 편에서 모든 사건을 해석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이때 나는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했다.
"그래도 그렇죠. 폭력은 무조건 안 돼요.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면 되나요? 그건 안 되는 거죠."
마치 내가 폭력을 당했던 것처럼 나는 강하게 주장했는데, 둘째 시누에게 그것은 중요치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동서가 의부증이 있다는,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만 이야기했다.
"에이씨! 결혼을 괜히 해서는 말이야. 내가 낚인 거야. 이혼해야 하는데 이혼도 안 해주고!"
도련님은 진심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인가? 아이도 싫고 결혼생활도 다 싫고 자신은 다시 솔로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혼을 해주지 않는다는 그 말을 하고 있다. 참 생각도 없다. 가관인 것은 시누와 시어머니 모두 이혼을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라는 며느리는 그 옆에서 마치 내가 이혼을 당하기라도 할 것처럼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옆에 서 있었다.
"그래도 이혼은 좀 그렇죠. 일단은 진정하고 집으로 가요."
이렇게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난투극이 일단락되어 잠잠해진 우리는 시댁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이 사건을 겪었을 때 나는 도련님의 폭력 전과를 의심했고 이들은 곧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들은 헤어지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매 명절마다 5년째 그녀, 나의 동서는 같은 패턴의 행동을 보인다. 명절 당일 오후가 되면 그렇게 찌푸린 얼굴을 하고 차 타고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다. 분란을 일으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속내가 뻔하고 반복되는 그 모습을 볼 때 나는 인간의 추함, 욕망을 본다. 그것은 그녀에게 내재해 있기도 하지만 내 속에 있는 것도 함께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더 역겹게 느껴진다. 동서만의 잘못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그 추함, 이기심은 한 시간이라도 더 눌러앉고 버티려는 도련님 안에도 있다. 그리고 한 시간이라도 아들을 붙잡고 명절음식을 먹이려는 시어머니에게서도 보인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소통하는 기쁨보다는 더 소유하고 더 지배하는 탐욕스러운 권력다툼을 명절마다 보는데 인간의 악함이 경멸스럽다.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어른들의 모습을 나의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한두 번이면 되었지,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현장을 반복학습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명절 당일 오후가 되면 동서 가족이 빨리 떠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조력한다. 그리고 떠나고 싶은 나의 욕망은 억누르고 '난 괜찮아'라는 표정과 말을 하며 하루를 더 기다린다.
저도 처음에는 명절 전 날 시댁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낸 후, 아침 먹고 내 집으로 혹은 친정으로 인사를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그 사람들, 나의 시댁 식구들을 대표하는 시어머니는 아침이 지나고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되어도 묵묵히 밥을 차려낼 뿐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제 그만 가야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터지지 않는지 남편은 '밥은 먹고 가야지, 내일 가야 안 막히지.' 하며 떠나기를 아쉬워했습니다.
3일이라는 명절기한을 1.5대 1.5로 정확히 배분하는 것이 평등이라고 생각하는 나. 명절은 1년 중 자주 있지 않은 날이니 2.5대 0.5로 나누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듯한 남편 사이에서 많이도 투쟁했습니다. 동서처럼 결혼 초에는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몇 번 명절을 펑크내기도 하는 투쟁을 거친 후에 다시 남편의 요구를 수용하여 2.5를 주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한 것은 이것은 남과 여의 평등차원의 문제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였습니다.
이것은 음모 같기도 하고, 제도 같기도 한 시댁이라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드러내는 경계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2.5를 가지는 것이 그들의 권리이자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저는 앞으로도 이 현상을 조금 더 관찰하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변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1.5대 1.5로 대등해지는 날이 오는 것이 과연 평화로운 것인지, 2.5대 0.5이지만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것이 평화인지 기다려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