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도시락

K-여성 이야기 1

by 아마르기

"우리 애를 죽이려고 그랬어? 지금 내가 보고 있다고! 그 선생 전화번호가 뭐야?"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며 나에게 따지는 지호 엄마.


원장실에서 나는 교사 전화번호 목록을 눈으로 훑어보며 애써 침착한 척 말을 건넸다.


"아니, 어머니. 제가 선생님 전화번호는 사생활이라서 드릴 수가 없구요. 하실 말씀을 전해주시면 전달하겠습니다."


"그따위 전달하겠다는 소리 하지 말고 번호를 달란 말이야. 소풍을 갔으면 아이를 잘 챙겨서 보내야지. 우리 애가 목이 말라서 죽기라도 했으면 어떡할 뻔했어? 어? 밥도 다 안 먹었고. 내가 싸준 물도 3분의 1도 안 먹었단 말이야. 이 더위에 우리 애가 물도 못 마시고 그렇게 학대받아야 하냐고?"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 엄마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아이가 물을 덜 마셨다고 지금 나에게 컴플레인을 하는 건지. 아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가 마시는 물의 양까지도 확인해야 하는 걸까? 15명이 넘는 아이들을 어떻게 일일이 챙기길 요구하는지 정말 요즘 엄마들은 알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로 고성이 또 들린다.


"지금 듣고 있는 거야? 원장이면 다냐고? 어서 선생 전화번호 직접 대라고. 내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아니면 구청에 민원 넣을 거야. 어린이집 운영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이 정도면 이성을 잃어도 제대로 잃은 것 같다. 해님반 선생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나는 쓱 빠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싸움은 당사자끼리 해야지. 괜히 내가 개입했다가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원장은 교사를 보호해야 위신이 서니까.


"어머니, 진정하시고요. 제가 지금 해님반 선생님께 가서 자초지종을 듣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따끔히 얘기할게요. 어떻게 아이 물도 안 챙기고 그랬을까요? 어머니께서 얼마나 속상하시............"


이 정도면 원장은 서비스직이다. 내 기분은 필요 없다. 잘잘못도 가릴 필요 없고. 그냥 고객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최대한 낮은 자세로 그들을 달래주어야 한다. 원장과 부모, 교사와 부모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갑을관계가 상황에 따라 변죽 되는 그런 관계.


"아.. 그러면..."


내가 갑자기 낮은 자세로 나가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호 엄마의 목소리가 보드랍게 돌변하였다.


"네. 제가 지금 당장 가서 얘기할게요. 걱정 마시고요. 지호 잘 챙겨주세요. 어머님, 제가 먼저 사과드릴게요."


이렇게 겨우 달래서 지호 엄마가 전화를 끊도록 유도하였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선생님을 먼저 찾아가서 물어보자. 선생님 입장에서 들어보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아이를 차별한 것은 아닐까? 정말 이 아이가 탈진할 정도로 교사가 방치한 것은 아닐까? 괜한 의심은 버리고 일단 가보자.




"해님반 선생님, 소풍 갔다 오느라 고생하셨죠?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아. 네.."


선생님들은 원장과의 대면을 꺼린다. 아니 그냥 젊은 원장이어도 원장이라는 자체가 가깝게 지내기에는 먼 그런 사이이다. 내가 또 책잡힐 일 만들지 않으려고 매일 아침 순회하면서 각 반 교실 상태도 살피고 교사들 동향도 살피니까.. 별로 좋지는 않았겠지. 아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착한 원장이야.


"지호 엄마에게서 전화 왔는데, 혹시 지호한테 무슨 일 있었나요?"


"아.. 그게... 글쎄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지호 엄마께서 요즘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아까 데려가실 때도 저한테 인사도 안 하시고 도시락만 확인하고 지호 인사도 안 시키고 데리고 가셨어요. 좀 화가 나신 것 같기도 하고. 한두 달 전만 해도 저한테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 요즘에는 아침에도 아이만 밀어 넣으시고 픽업하실 때도 아무 말이 없으세요. 표정도 어두우시고 그래요. 혹시 전화하셨어요?"


"그러셨구나. 조금 황당하긴 한데, 지호 물을 많이 안 먹였다고 화가 많이 나셨나 봐요. 선생님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난리 치시는데 내가 안 알려드렸어요. 좀 많이 흥분하신 것 같아서요. 지호 오늘 소풍 가서 어땠나요?"


"그냥 다른 아이들이랑 똑같았어요. 그런데 요즘 엄마가 달라져서 그런지 지호도 풀이 많이 죽어있어요. 교실에서도 다른 친구들이랑 잘 안 놀고 대부분의 경우 혼자서 레고를 하거나 가만히 앉아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말을 걸기도 하는데 별로 웃지도 않고 그래요. 걱정이 좀 되죠. 그리고 지호가 물을 많이 안 마셨다고 하는데 다른 애들도 그래요. 아니 가끔 어머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셔서 애들에게 단체로 물을 마시라고 시간을 주거든요. 그래도 안 먹는 애들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잖아요."


없잖아요.

그 말이 귀에 거슬린다.

교사로서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은 다 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인데 그래도 지금 감히 원장한테 따지는 것인가? 그래도 수용하자.


"그렇죠. 그래도 어머님들의 상태를 봐서 좀 아이들을 잘 챙겨야 할 것 같아요. 지호 엄마는 저도 좀 잘 챙겨볼게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한 번 전화를 드려야 하지 않을지..."


"제가 전화를요?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이제 내가 교사를 지적하고 나무라는 원장이 되어버렸다.

중재자.

이것이 또 원장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교사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그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최대한 아이와 부모를 지원할 수 있도록 교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이것도 내 할 일 중 하나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겠지.


"아니에요....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고 이럴 때는 최대한 부모의 입장을 고려해서 잘 말씀드려야 일이 해결되니까...."


교사의 얼굴이 벌게진다. 착하고 순한.

아이들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교사 중 하나인 해님반 선생님의 마음에 내가 생채기를 낸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우선.. 조금 정리 좀 하고.. 어떻게 할지 생각을 좀 해봅시다. 소풍 다녀와서 고단할 텐데 이런 일이 생겨서 마음이 안 좋네요. 우선 푹 쉬어요."


이렇게 소동이 일단락되는 것 같았다.


"원장님!"


어린이집 사무 일을 돕는 송이 씨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 보았는데....

사무실 바깥쪽에 서 있는 지호 엄마가 보였다.


지호 엄마는 이 무더운 날씨에 위아래 검은색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사무실 쪽을 향해 서 있었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라 학부모들이 오가고 있었다. 다들 지나가며 위아래 훑어보고 지나갔다.

지호 엄마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깊은 슬픔에 빠진 듯한 얼굴로

그렇게 서 있.었.다.


"어머니~"하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머니, 여기서 뭐 하세요?"


2초간의 정적.

아무 반응도 움직임도 없는 멈춤 상태.


"조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어.. 어머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우선 원 운영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어머니, 저랑 차 한잔하실래요? 어제 일 때문에 그러시죠? 말씀드릴게요. 차 한잔하세요."


"이제 다 죽었어. 정의가 없어."


지호 엄마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한 번 더 요청했다.


"어머니, 그러지 마시고 사무실에 들어오세요. 아침에 차 안 드셨죠?" 하며 슬쩍 팔을 끌어보았다.


의외로 쉽게 지호 엄마가 발을 떼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지호 엄마를 사무실로 안내하였다.


"어머니 요즘 뭐 힘든 일 있으세요?"


가까스로 원장실로 안내하여 지호 엄마에게 말을 건네어 보았다.

지호 엄마는 위로의 한 마디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내 눈에 경계심을 풀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좀 힘들어요. 애들 셋 뒷바라지하는 것도 지치고 나는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제가 독일에서 남편하고 같이 유학했거든요. 그때 남편하고 같이 학교에 다녔는데 저는 그 과에서 탑이었다고요.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대학에서 최우수 학생에게만 주는 그런 상도 받고. 정말 저는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지금 남편은 교수 생활하고 있고 이 사람은 바빠서 애들이나 저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고. 저는 애들만 챙기며 살다 보니 이렇게 10년이 흘러서 나는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애들을 챙기고 있는데 혹시나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불안하기도 하고. 아무튼 죄송해요."


뜻밖이었다.


지호 엄마는 자신이 전국 최고 대학 출신 최고 지성이었으나 지금 이렇게 아이들만 챙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자기 속내를 얘기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리고 아까 묵념을 한 것은 제가 시위한 거예요. 정말이지 요즘 세상이, 조직이 잘못되어서 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요. 여기 어린이집도 제가 지난번에 얘기했죠? 그거 선생님 전화번호도 못 알려주나요? 뭐가 겁이 나서 그렇게. 그래서 제가 이 죽은 사회에 묵념한 거라고요."


"아............"


할 말이 없었다. 괴이한 행동이었으나 지호 엄마가 하는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반박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가만히 지호 엄마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호 엄마는 이 일이 있은 후로 우울증 치료를 받고 나아진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문득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




이 이야기는 제가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각색해서 썼습니다. 당시에 저는 20대 후반의 미혼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지호 엄마가 정신질환 가진 환자이고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특별한 사례일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는 40대 중년이 된 저에게 이 사건은 언젠가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혼기간이 길어질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에 대한 시기심이 커졌고 제 안에서 '검은 옷을 입고 묵념을 하던 지호 엄마'가 종종 생각납니다. 심지어 지호 엄마처럼 묵념 시위라도 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조용히 집안에서 소멸할까 봐 두렵습니다.

‘사라지는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내가 살아있었음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앞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가 될지 모르지만 나와 내 주변에서 마주쳤던 ‘결혼한 여성의 비애’에 관한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이 작업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누군가 읽고 공감한다면 나에게도, 그에게도 치유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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