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내가 입사할 무렵의 회사는 1년에 신입 여직원이 1-2명에 불과한 심각한 남초회사였다. 출근 첫 회식부터 노래방과 탬버린과 춤추는 아저씨들을 만난 20대의 나는 빠르게 조직생활의 스킬을 익혀갔다. 회식자리에서 진상부리는 사람을 피하는 법, 표시나지 않게 빠져나오는 법, 불편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색하지 않게 웃어넘기는 법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도 나는 회사에서 재미가 있던 없던 그 누구보다 자주, 큰 소리로 웃는 사람이다. 그렇게 버릇이 들어버려 이제 그게 내 성격인 것만 같다.
입사 3년차 쯤 되었던 어느 날, 회식 2차에서 나와 팀장님, 차장님만 함께 일하던 50대 교수님의 단골 바에 따라가게 되었다. 교수님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것 같은 여사장님이 운영하던 그 곳에는 손님이 우리 뿐이었고, 사장님은 단골인 교수님 옆에 앉아 살갑게 이야기를 건네었다. 무슨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마음이 거북했는데, 다들 담배를 피우러 나가신 사이 사장님이 자기 딸 이야기를 꺼내자 (아마 그분은 나의 어색함을 풀어주려고 했던 것 같지만) 본격적으로 ‘나는 왜 여기 앉아있지?’하고 자책인지 분노인지 모를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택시를 타고 또 3차를 간다고 하기에 처음으로 “저는 택시에 타지 않고 이만 집에 가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차장님이 “회사생활 잘 하려면 같이 가야지.”라고 했던가? 술기운인지 어디서 없던 용기가 나서 ”그렇게까지 잘하고 싶지는 않네요.” 뭐 이런 대답을 하고 뒤돌아 지하철역으로 씩씩대며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부터 공식적이지 않은 회식자리에 나를 부르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공교롭게 얼마 후 결혼도 하게 되었기 때문에, 미혼이고 나보다 어린 다른 여직원들로 내 자리가 대체된 것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나의 회사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업무시간 이후에 쓸데없는 감정노동을 견디지 않게 되어 오히려 가뿐했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소위 ‘착하다’는 평을 듣는 직원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내 의사를 표시하는 데에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다.
최근의 회사는 채용 방침에 큰 변화가 찾아와, 신규 입사자 중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아지기까지 했다. 갑자기 많아진 여자 후배들은 남초회사 시절부터 존재해 온 불합리한 제도, 부당한 조직문화에 ‘왜 이런 식이죠?’하고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공정하지 않은 것에 목소리를 내는 그들이 멋지고, 부럽고, 그러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 질 때가 많다.
그리 당당하지 못한 선배로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기는 어렵지만, 대신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읽으며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의 나보다는 똑부러지지만 여전히 남자 후배들보다 비교적 상냥하고, 거절하는 것이 어렵고, 자신의 역량과 업적을 뽐내기를 낯간지러워하는 여직원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었다. 조직의 부당함과 인간관계의 회의감 때문에, 일하는 나를 잃어버리는 후배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꼭 전문적이거나 창의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직업인으로의 삶은 다른 누구 아닌 나로서 살 수 있는 힘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남자들 사이에 고전적으로 통용되어온 방식을 관찰하고 시도해보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성실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와 존재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여자들끼리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네트워크를 만들라고. 상냥해서 좋은 평판을 받기보다는 함부로 대하지 못할 캐릭터를 구축하라고. 세다, 독하다는 평판이 부당하게 따라붙기도 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흔들리지 말라고.”
“너는 너무 크다, 뾰족하다, 울퉁불퉁하다는 타박에 웅크리거나 위축되는 대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품지 못하는 이 나라가 좁다는 것을 느껴보기. 내 후배 세대의 여성들에게 여행이 이런 경험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