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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Aug 09. 2024

1988 서울 올림픽 곰인형과 함께 보는 파리 올림픽

나처럼 엄마가 된 나의 오래된 애착인형


나의 생애 첫 기억부터 그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무뚝뚝한 시옷자 입을 하고 가슴에 오륜기와 SEOUL 1988을 달고 있는 하얀 곰인형. 아빠 친구분이 선물로 주셨다는 그 인형은 ‘곰돌이’라는 흔하디 흔한 이름을 부여받고, 나와 동생의 모든 놀이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리 둘의 애착인형이었다. 언젠가 뽀얀 색이었을 몸통은 손때가 가득 묻어 아무리 빨아도 회색 빛을 벗지 못하고, 진작에 콧등은 까져서 반들반들해질만큼 우리는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영화 ‘토이스토리’나 다른 동화들에서 그렇게 되듯이 나와 동생은 점점 자라서 어른이 되고, 회색빛 곰인형은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결말일 줄 알았는데, 여간하면 물건을 버리는 일이 없는 우리 부모님의 집에서 내 아이가 곰돌이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예상못한 전개였다. 그렇게 그는 다시 쓸모를 찾았다.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아이는 특별히 애착인형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이는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인형을 며칠 데리고 다니다가 금세 다른 인형에게로 관심이 옮겨갔다. 물론 우리의 곰돌이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끔 찰나의 사랑을 며칠 누릴 뿐이었다. 보송하고 귀여운 다른 인형들에 비해 털도 거칠고 표정도 퉁명스러운 것을 고려하면 그정도의 관심을 받는 것도 사실 신기하긴 했지만.


하지만 할머니 - 그러니까 나의 엄마 - 가 이 곰돌이가 사실 엄마의 곰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나서, 곰돌이의 지위는 급격히 상승했다. 매일 우리 집과 부모님 댁을 오가는 아이는 수시로 곰돌이를 데리고 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엄마, 곰돌이 보고싶었지? 그래서 내가 데리고 왔어.“ 하면서. 가끔 자기가 하듯이 나도 곰돌이를 안고 자라고 배려 혹은 지시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부모님 댁에서 돌아오면서 곰돌이뿐 아니라 다른 인형들 중 작은 곰인형을 넷이나 데리고 왔다. 곰돌이는 엄마고, 작은 곰인형 4인방은 곰돌이의 아기들이라고 한다.

너 언제 아이를 넷이나 낳았어? 아니 그것보다 너.. 남자 아니었어…?

나의 혼란스러운 눈동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거실 한켠에 담요와 방석을 깔고 곰돌이와 아기들을 눕힌다. 아기들은 엄마와 함께 자야 한다면서.


엊그제는 소파에 나의 아이와, 곰돌이와, 곰돌이의 아기들과 나란히 앉아 파리 올림픽 경기를 봤다. 1988년에 태어나 나의 유년시절을 함께하고, 또 나와 같이 (얼떨결에) 엄마가 되어 2024년에는 내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나의 회색 곰인형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미니멀리즘이 미덕인 시대라, 오래된 물건들이 가진 힘을 너무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곰돌이를 보면 나의 어린 시절도, 내 아이의 어린 시절도 떠올리게 되겠지.


이 인형은 앞으로도 버리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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