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적 성찰이 필요할 때

카리스마를 식별하기

by 이네숨

지도자의 권위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흔히 직함과 자리, 경력, 집단 내 위계에서 권위를 보려 한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신앙인으로서 종교지도자의 권위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권위가 올바르게 작동하려면 지도자 스스로가 자신의 주체성과 행위를 성찰해야 한다. 시대의 변화와 인간 심리를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부활에 대한 전승을 오늘의 신앙인에게 어떻게 건네야 할지 묻는 태도에서 권위의 정당성이 시작된다. 신앙인의 겉모습만으로 믿음을 단정할 수 없다.


미사 참여가 불성실해 보인다고 곧바로 신앙이 약하다고 할 수 없고, 반대로 열심히 보이는 사람이 언제나 죄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며 선을 행하는 삶은 타인이 함부로 측량할 수 없다. 이 겸손한 인식이 지도자의 첫 덕목이다.


오늘의 사회는 교회 밖 법과 헌법의 질서 속에서 죄와 처벌을 구분한다. 그만큼 신앙인들은 “교회가 말하는 죄란 무엇인가”를 더 자주 묻는다.

특히 고해를 앞둔 이들은 자신의 욕망과 본능, 자연스러운 충동을 어디까지 절제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는다. 성소수자 문제처럼 다양성과 인간 이해가 긴장하는 지점에서는, 신앙과 비신앙의 갈림길에서 서 있는 신자들의 갈등을 지도자가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 과학과 심리학의 발전이 인간 이해를 확장해 온 현실을 무시한 채 단순한 금지와 낙인으로 대응한다면, 권위는 신앙의 성숙을 돕지 못한다.


결국 종교 지도자는 세 가지 길 앞에 선다.

첫째, 권위를 내세워 가르치기만 할 것인가. 둘째, 강압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셋째, 충만한 신앙 체험을 함께 나누며 동행할 것인가.

정당한 권위는 셋째 길, 곧 동행과 섬김에서 자란다.

타인의 양심과 판단을 존중하고, 이상과 현실을 함께 고려해 인간의 존엄을 일깨우는 것이 권위의 역할이다

반대로 타인의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힘으로 순응을 끌어내는 순간 권위는 이미 권위를 잃는다. 역사 속 독재자들은 폭력과 선동으로 추락한 권위를 보완하려 했지만,

그것은 우상화일 뿐 정당성의 회복이 아니었다.

종교 공동체에서 강압과 암묵적 복종이 누적되면, 신앙인은 분별력을 잃고 공동체는 윤리적 감수성을 상실한다.


우리가 이 비극의 역사에서 찾아야 할 희망은 분별과 공동체적 성찰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자신의 뜻을 세우기보다 하느님의 뜻을 구하며 모든 것을 맡겼다고 증언한다.

권위는 힘의 축적이 아니라 은총의 선물에서 오며(카리스마), 그 은총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일으킬 때 비로소 드러난다. 오늘의 종교 지도자는 시대의 언어로 복음을 해석하여 신앙인의 내적 갈등을 이해하고, 죄의 문제를 정죄의 언어가 아니라 치유와 회개의 여정으로 안내해야 한다.


신자들 또한 한 개인의 주체로서 지도자의 말과 행위를 분별할 책임이 있다.

결론적으로, 종교인의 권위는 직함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

시대를 읽는 지성과 인간을 향한 존중, 그리고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겸손이 권위를 정당화한다.

강압이 아닌 동행, 억압이 아닌 해석, 통제가 아닌 성숙을 돕는 섬김의 권위—그때 권위는 공동체를 살리고 신앙을 성숙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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