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감한 망고 Apr 12. 2022

릭샤를 타고 왔다고요?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14일 차(2022. 03. 20)

과연 인도에 와 보니 말로만 듣던 오토릭샤가 사방천지에 돌아다닌다. 초록색 차체에 샛노란 천막을 덮어 뚝딱 완성한 듯한 모습이 영락없는 장난감 자동차다. 문짝도 없이 덜컹덜컹 굴러가는 뒷모습에 반해버린 설렘은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처음으로 릭샤에 올라 탄 날은 인도에 온 후 맞이한 첫 번째 금요일 저녁이었다. 숙소 근처에 가볼 만한 곳이 있다길래 우버 앱으로 오토릭샤를 불렀다. 인도에서 릭샤를 이용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상에서 잡아탄 후 가격을 흥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버 앱을 통해 고정된 가격으로 택시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인도살이 햇병아리에게 가격 흥정이란 아직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 안전하게 우버를 선택했다.

퇴근 시간과 겹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싶더니  분쯤 지나 한 기사와 연결됐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도로 옆에 서서 쭈뼛쭈뼛 기다릴 때 신기한 광경이 눈앞을 스쳐갔다. 릭샤 하나에 키가 작고 왜소한 남자 서넛이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처럼 타고 있었다. 일행끼리만 타는 줄 알았더니 마을버스처럼 합승할 수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함께 타는 릭샤는 요금이 5-10루피, 한국돈 80-160원꼴이다. 과연 가장 저렴하고 서민적인 대중교통이라 부를 만하다.

우버 릭샤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차량번호가 맞는지 확인하고 뒷좌석에 올라타 목적지를 한번 더 말해주면 내 할 일은 끝. 이제 릭샤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첫날은 도대체가 어떻게 생겨먹은 차인지 하나하나 뜯어보느라 목적지까지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저기 좀 봐. 왼쪽 사이드 미러가 없어. 이 양반 지금 감으로 운전하는 거 아냐? 가만 보니 안전벨트도 없네. 정수리는 천장에 닿기 직전이고 등받이는 또 왜 이렇게 누워있다니. 근데 제일 충격적인 게 뭔지 알아? 문짝이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믿음직스러운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릭샤를 자동차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일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인 듯 자동차 아닌 듯 애매모호한 릭샤를 타고 15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격은 70루피, 한국돈으로 1100원이다. 가볍게 땡큐를 건네고 우버 페이나 현지 QR코드결제앱으로 대금을 치르면 기사는 탈탈거리는 시동 소리와 함께 다음 손님을 찾아 길을 떠난다. 릭샤에서 내리자마자 허리와 엉덩이에 저절로 손이 가면서 아구구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소달구지에 올라탔다 내려온 것처럼 궁둥뼈 부근에 얼얼한 기운이 감돈다.

첫 번째 신고식을 치른 후 두 번, 세 번, 횟수가 쌓여갈수록 어느덧 릭샤는 삶의 일부가 되어간다. 숙소를 기준으로 30분 이내 거리는 릭샤를 타고 이동한다는 나만의 룰도 생겼다. 웬일인지 나는 릭샤가 퍽 마음에 든다. 처음에는 놀라 자빠질 뻔한 것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졌다고나 할까. 박살난 사이드미러도, 흙먼지와 매연이 걸러지지 않는 뻥 뚫린 창문도, 아슬아슬 10센티를 남기고 옆 차를 피해 가는 곡예운전도 릭샤를 탔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네가 아직 젊고 건강해서 그렇다고 말하고픈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기관지부터 피부까지 몸뚱이 예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나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지. 나에게 릭샤는 인도의 낭만이다. 인도살이가 아름답다 느껴지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낭만이 아닐까.

릭샤를 타고 왔다고요? 대단하시네요. 나보다 3개월 먼저 인도에 상륙한 H를 처음 만난 날 그가 토끼눈으로 되물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오토릭샤를 타지 않았다는 그는 일반 우버택시도 얼마 안 하는데 굳이 힘들게 릭샤를 탔느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허나 내 입장에서는 그쪽이 더 신기하다. 인도에 와서 단 한 번도 릭샤를 타지 않았다니 이 정도면 직무 유기 아닌가 싶은데 누가 더 놀라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같은 인도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사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기사 딸린 승용차를 모는 한인의 눈에는 릭샤를 타고 다니는 내 모습이 유별나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인도에 머무는 동안 후회 없이 인도를 누리기로 마음먹었다. 인도답게  삶이 무엇인지 아직은 감히 말할 수 없지만 분명 그 첫 걸음에 릭샤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날씨 굉장히 맑은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