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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Feb 14. 2023

정말 거대한 가스실이었지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345일차(2023.02.14)

인도에서의 첫겨울을 났다. 짧을 줄 알았던 계절이 참으로 길기도 길었다. 10월부터 시작된 찬바람과 희뿌연 먼지가 온 도시를 집어삼킨 지 정확히 4개월 하고도 열흘이 지났을 때 연한 하늘빛이 빼꼼히 돌아왔다.

내 생애 가장 혹독한 겨울이었다. 영하로 내려가는 법이 없다던 델리 날씨는 5년 만에 최대 한파를 맞았고 안개처럼 뒤덮은 미세먼지는 평년보다 두껍고 독했다. 살을 에는 칼바람은 없었지만 뼈에 스민 냉기가 온 집안을 잠식했다. 나름의 겨울나기 노하우도 생겼다. 히트텍 위로 극세사 잠옷을 걸치고, 수면 양말은 야무지게 바짝 끌어올려 발목을 꽁꽁 감춘다. 목에는 얇은 스카프를 동여매고 어깨 위로는 라이언 모담요를 두 바퀴 두르면 지난 4개월을 버티게 한 홈패션이 완성된다.

한국에서 챙겨 온 1인용 전기장판이 없었다면 자다가 입이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온돌 없는 외국 집의 최대 단점이 이런 것이었을까. 입김이 나올 만큼 냉혹한 인도 아파트다. 하루는 너무 추워 2인용 황토 전기장판을 둘둘 말아 어깨를 덮은 채 컴퓨터를 했다.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났다. 작은 몸집에는 어울리지 않을 큰 장판이 서로 겹치고 겹쳐 거무스름하게 익어 버렸다. 망했다. 엄마가 챙겨준 비싼 장판을 이렇게 허무하게 해 먹다니 이건 무덤까지 비밀로 해야겠다.

추위도 추위지만 암만 그래봐야 미세먼지는 못 이긴다. 거긴 요새 어떠니? 날씨는 괜찮아졌고? 엊그제 영상 통화를 하던 중 아빠가 물었다. 정말 거대한 가스실이었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나게 말을 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고. 코앞 이웃집 베란다조차 파묻혀 버린다고.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조금 나아지는데 밤만 되면 또다시 아비규환이 된다고. 그런 날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고.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온 머리칼과 속옷에까지 담배 쩐내가 밴다고. 농염한 미세먼지는 영락없는 담뱃진 냄새라고.


그런 데서 어떻게 산다니? 어휴, 나는 못 살아. 화면 너머 엄마의 목소리도 들린다. 바로 그런 데서 첫 번째 겨울을 났다. 다시 돌아올 파란 하늘, 그거 하나만 기다리며 묵묵히 참았다. 결국 돌아왔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시원한 가시거리와 푸를 듯 말 듯한 연하늘빛 상공. 겨울이 끝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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