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감한 망고 Apr 15. 2024

이사하기 쉽지 않다

03.

인도 내에서 이사를 할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현지 이사업체를 불러 견적을 받는 일부터 이사 당일 나가는 아파트와 들어가는 아파트 양쪽에 돈을 내는 일까지 어느 하나 마음을 놓았다가는 된통 매운맛에 찌들게 된다.


한국에서 인도로 국제 이사를 준비할 때는 나름 체계적인 프로세스에 따라 견적을 받았다. 비록 코로나 악재까지 맞물려 비용은 오지게 비쌌고 부산에서 출항한 짐이 인도까지 오는 데 꼬박 2개월이 걸렸지만 큰 파손 없이 무탈하게 받았다. 반면 인도에서 인도로 이사를 준비할 때는 차로 10분이면 족한 가까운 거리로 옮기는 이사임에도 좀 더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했다. 방심하면 눈 뜨고 코 베이는 전쟁터이기에 이사 노이로제에 걸릴 만큼 신경이 곤두선 나날이었다.


업체를 불러 견적을 받은 날, 직원은 이 방 저 방 흘끗거리더니 이내 식탁 의자에 털썩 앉아 종이를 꺼내 가격부터 적었다. 장롱 안에 옷은 몇 벌이나 있는지, 주방 찬장에 그릇은 몇 점인지, 책은 또 몇 권인지,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장롱이든 찬장이든 문 한 번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러고는 6만 루피를 불렀다. 고작 이 만한 짐에 100만 원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이미 적정 가격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3배는 짐이 많은 한국인 가정이 10배는 거리가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갔을 때 최종 비용이 60만 원이었다. 그런데도 100만 원을 부르다니 이것은 명백한 벗겨먹기 수작이다. 현지인 직원을 끼고 가격을 후려쳐 적정 예산 범위로 내려야 했고 언제나처럼 구질구질하게 끈질긴 설득 끝에 해결했다. 인도에서는 정당한 이사 비용을 요구하는 일 하나조차도 결코 만만한 법이 없다.


이삿날을 정하고 나면 이제 하우스 인스펙션 차례다. 인도의 집주인은 대개 매우 탐욕스럽고 성질이 급해 조금도 양보하려는 법이 없다. 세입자를 곱게 보내주지 않는 악한 관행이 있어 집안 곳곳을 이 잡듯 검사해 아주 작은 흠이라도 찾아내고야 만다. 정작 세입자가 사는 동안 집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토로하면 당신네가 알아서 하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나갈 때가 되니 세입자 돈으로 집안을 싹 다 수리하고 싶은 모양이다. 집주인은 여기저기 고장이 났으니 50만 원을 토해내라 우겼으나 눈물겨운 합의를 거쳐 20만 원 언저리로 깎아냈다.


뿐만 아니라 이사를 나가고 들어오는 데에도 아파트 관리실에 돈을 내야 한다. 한두 푼이 아니라 큰돈을 양쪽에 내야 하니 이것 또한 부담이다. 2년 내내 화장실 누수에 흰 곰팡이에 온통 돈 나갈 골칫덩이만 안겨준 얄미운 아파트에 이사 간다고 20만 원이나 내야 한다면 흔쾌히 주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더군다나 이미 정산을 마친 전기료와 가스료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는 미납되었으니 다 내고 나가라 성화를 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엉망진창이다.


그럼에도 인도에서 이사를 해야 한다면 기왕 하는 김에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을 테다. 이 놈의 이사 때문에 노상 심장이 두근거려 살 수가 없다.

:)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집을 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