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사가 힘든 거야. 한국이라고 안 그러간디. 여기도 이사 한 번 하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줄 아냐. 몇 주 동안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치고 다 그런 거지. 엄마는 나의 뻑적지근한 이사 후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공감한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긴 했지만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휴대폰 화면 속에서 느껴지는 덤덤한 태도에 슬그머니 약이 올라 인도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은 참 쉽다는 반항심이 들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사는 힘들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어려운 일이라 나만 힘들다고 말할 입장도 못 된다. 나보다 곱절은 힘든 이사를 해내는 사람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는데 고작 이 만한 일로 지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겸연쩍은 깨달음까지 얻었으니 이만하면 이사야말로 도를 닦는 수행이다 싶다.
새집으로 옮긴 지 3주가 지났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현관을 들락날락하며 때늦은 보수 작업을 이어 갔는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라 나 역시 마음고생 몸고생이 적지는 않았다. 이삿짐이 들어오기 전 방충망이며 커튼이며 모든 준비는 3일이면 뽕을 뽑는다고 아무 걱정 말라던 매니저는 역시나 거짓말쟁이였다. 3일은커녕 3주가 걸렸으니 거짓말쟁이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억울하진 않으리라.
이삿날 새집에 와 보니 방 2개에는 달다가 관둔 커튼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매니저는 분명 커튼을 다 달았다고 우겼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일절 감독하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증거였다. 어디 그뿐이랴. 약속한 모기장을 달지 않은 주방은 또 어떠한가. 이제 와서 주방은 달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 너무 잘 알기에 다시 사진을 찍어 보내며 끝내 주방에도 모기장을 설치해 주기로 단도리를 했다. 게다가 이사 전에 넣어준다던 전자레인지와 오븐도 엊그제야 보내주었으니 기본적인 사전 작업이 마무리되는 데 3주가 걸렸다는 말에는 일말의 과장도 섞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세탁기는 방문을 통과하지 못해 뻥 뚫린 베란다에 설치해야 했다. 전기와 물을 끌어다 쓸 수 있게 호스를 연결하고 전선 익스텐션을 설치하는 아찔한 대작업을 진행했다. 에어컨은 또 어떠한가. 거실 에어컨을 틀자마자 탱크 바퀴가 굴러가듯 덜덜덜 굉음이 나와 하루는 날 잡고 천장을 뜯어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하얀 가루가 온 집안에 꽃가루처럼 휘날렸다. 음식 한 번 짓지 않은 주방은 이미 수도가 터져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고 매일매일 크고 작은 개미떼가 출몰해 방역 업체를 세 번이나 불렀다. 모든 일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일어났다.
지난주 금요일부터는 인터넷이 먹통이다. 집주인이 설치해 준 타타 5G가 되는 날보다 안 되는 날이 많더니 이토록 허무하게 고장이 났다. 드문드문 인터넷이 연결될 때에도 컴퓨터를 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집은 전 집보다 정전이 열 배는 잦아 언제 어디서 끊길지 모르는 까만 화면이 두렵기 때문이다.
새 집에 얼추 적응을 끝냈냐는 엄마에게 당연한 걸 뭘 묻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인도 집에 완전한 적응이란 없어.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마주할 테지. 그러니 나의 적응은 영원히 현재진행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