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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May 22. 2024

빨간 가스통을 주문한다

08.

인도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사용한 인덕션은 LG에서 만든 하이브리드 3구였다. 비록 군고구마 구워 먹는다고 설치다가 펄펄 끓는 고구마 단물이 유리 상판에 쩌억 들러붙는 바람에 와자작 금이 가 버리긴 했지만 그 인덕션으로 얼렁뚱땅 맛난 음식을 많이도 해 먹었다.


고놈을 인도까지 데려오긴 했다. 컨테이너에 고이 실어 트럭 타고 배 타고 새 땅에서 받긴 했지만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다. 첫 번째로 들어간 아파트에는 가스불이 빌트인이었다. 아파트 중앙 관리실에서 각 호로 파이프를 통해 가스를 공급하는 방식이라 입주자는 매달 날아오는 정산서를 확인하고 돈을 계좌로 입금하면 되었다. 주방에는 구태여 인덕션까지 꺼내 놓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에 가스레인지를 야무지게 활용하면 좋겠다 싶어 인덕션은 두툼한 이사박스에 담긴 그대로  한쪽 구석에 밀어 넣었다.


두 번째로 들어온 아파트는 조금 더 재밌어졌다. 이곳도 가스레인지가 빌트인은 빌트인인데 파이프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입주자가 직접 가스통을 주문해서 가스레인지와 연결해야 한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주방에 내 몸통보다 뚱뚱한 빨간 가스통을 들여놓고 사는 모습을,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90년대생의 눈에는 참으로 재밌고 신기한 일이다. 저러다 펑 터지면 어떡하나 불안하기보다는 가스통은 어쩌다 저렇게 귀여운 몸매를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까지 든다.


이전 집에서는 매달 검침원이 찾아와 숫자를 읽고 적어갔다면 이제는 그럴 일조차 없어졌다. 통 안에 든 가스가 소진되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럼 재빨리 기사를 불러 새 통을 주문하고 교체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애초에 판매자가 가스통에 가스를 반만 집어넣지 않는 이상 딱히 조작할 만한 요소도 없는 정직한 방식이라 오히려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닐 때면 자전거와 오토바이에 빨간 통을 바나나 송이처럼 대여섯 개씩 주렁주렁 달고 배달하는 아저씨와 자주 마주친다. 전기가 귀하고 공급도 불안한 인도에서 인덕션은 사치다. 가가호호 가스통을 쓰는 나라에 왔다면 그들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순리에 맞다.


어느 날 저녁 보글보글 강된장을 끓이다 불이 끊긴다면 놀라지 말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때가 되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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