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과 6월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더니 그럴듯한 제목이 나왔다. '찬물을 틀면 온수가 나온다'라, 암만 들어도 뚱딴지같은 소리다. 찬물을 틀었는데 왜 온수가 나올까? 당신은 아마도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첫째, 찬물과 더운물의 방향이 바뀌어 표기되었다.
둘째, 물을 냉각시키는 시설이 없어 냉수가 나오지 않는다.
셋째, 날이 더워 냉수조차 온수가 되었다.
정답이 무엇이든 그리 쾌적한 상황은 아닐 테고 이미 누군가는 세 가지 가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썹 사이로 한가득 주름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재밌고 무시무시한 사실은 이곳 인도는 위 셋 중 무엇이든 답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2024년의 초여름만 놓고 이야기해 보자면 우리 집은 세 번째가 정답이었다.
인도는 50도를 넘긴 폭염으로 전 세계 뉴스를 장식했다. 쏟아지는 이목을 받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죽었는지 앞다투어 보도하기 바빴고, 입이 바짝 말라 보이는 앙상한 아저씨의 인터뷰가 반복해서 방송됐다. 깜깜한 12시가 되어도 좀처럼 40도에서 떨어지지 않는 고온이 몇 날 며칠 이어져 낮이고 밤이고 걷기조차 힘든 날이 늘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선풍기를 틀지 못해 실신했고 살 만한 사람들은 에어컨 없이 일분일초도 견디기 어렵다며 아우성쳤다.
인도에서 3번째 여름을 나고 있는 나로서도 올해가 가장 덥고 악독함을 느낀다. 샌들을 신고 맨발을 드러내면 단 10분 만에 살껍질이 뻘겋게 화상을 입었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심장이 조여오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식중독과 유사한 인도 특유의 열사병에 걸려 다섯 통이나 링거를 맞았고, 고질적인 헤르페스 물집이 눈가를 잠식하며 면역력 비상의 경고종을 울렸다.
이런저런 사연이야 많지만 그럼에도 5월과 6월을 그려보자면 나는 숱한 아픔의 시간보다는 펄펄 끓는 수돗물로 기억하고 싶다. 한여름에도 온수로 샤워하는, 아주 지독하게 찬물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사실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가이저(geyser)를 틀고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온수가 나오다니 외려 반가운 일이다. 따신 물이 상시 나와 좋고, 전기세도 굳어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오이나 사과 따위의 채소와 과일을 씻을 때 찬물이 아닌 더운물에 씻어야 하는 점이 살짝 아쉽긴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다 하루는 아주 큰코다친 일이 벌어졌다. 온몸이 40도로 펄펄 끓는 열병에 걸려 토를 하고 설사를 하고 급기야 저혈압 쇼크로 눈앞이 하얘지는 새벽이 찾아왔다. 차가운 물에 수건을 적셔 몸을 닦아내고 싶었지만 아무리 수도꼭지를 파란색 끝으로 밀어붙여도 뜨거운 물만 콸콸콸 쏟아졌다. 하는 수 없이 그거라도 쭉 비틀어 물기를 짜내고 이마에 덮어보지만 열에 열을 더해 머리는 한층 더 지끈거렸다. 결국 냉장고에 넣어놓은 비상 생수 한 통을 꺼내와 귀하디 귀한 마실 물로 수건을 적셨다. 찬물이 나오지 않아 아찔했던, 아니,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애달프게 찬물을 찾았던 밤이었다.
긴 초여름을 지나 이제 7월이 되었고 지난주부터 완연한 몬순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온도는 33도 언저리로 내려갔으나 희부연 비구름이 흩뿌려진 하늘이 하루종일 먹먹하게 제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숨만 쉬어도 땀이 줄줄 새는 습도는 또 하나의 산이지만 이렇게 계절의 한 꼭지가 끝내 지나갔음을 매번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느낀다. 물이 훅 차가워졌달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