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Your Darlings, 2013, 감독 존 크로키다스
예술과 사랑.
둘의 닮은 점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 한 가지는, 예술과 사랑 모두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가까워진다는 것. 혹은 삶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워져 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2013년도에 대림 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전 '라이언 맥긴리-청춘, 그 찬란한 기록'은 당시에 상당한 인기가 있었던 전시였다. (http://www.daelimmuseum.org/pastViewTab1.do) 나 역시 전시를 보고 나서의 그 감동에 휩쓸려 그의 대표작이 실려있는 액자를 샀고, 그 액자는 아직도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 킬 유어 달링을 보고 나서, 이 영화와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전이 참 닮아 있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자신을 알고, 너 자신을 망쳐라."
영화 중간에 나오는 한 대사이다. 열병처럼 앓게 되는 청춘의 열망과 불안감, 또 설렘은 때때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함부로 '실패' 라거나 '어리석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자신의 열망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예술과 같은 것이니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주인공 엘런 긴즈버그는 '비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미국의 청년세대를 주도한 미국의 시인이다. 그는 문화적, 사회적으로 순응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창조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삶을 열망하였다. 그의 뮤즈 루시엔 카, 함께했던 잭 케루악 등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실존 인물이었으며, 스토리 또한 실화이지만 현실이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영화적이다. 동성애라는 드라마틱한 요소는 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큰 힘이 된다. 세상의 모든 금기에 맞서고 싶었던 그들.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의 삶을 통해서 그들이 열망했던 진정한 예술을 실현해 낸 듯하다.
영화 곳곳에 삽입된 음악은 영화 속에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광기와 열정을 절절하고 또 가끔씩은 섬뜩하게 보여준다. 데인 드한, 다니엘 레드클리프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특히 데인 드한만의 퇴폐적인 아름다움과 소년과 같은 매력이 아주 절묘하게 섞여 드러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또한 실존 인물의 사진과 비교해 보아도 별다른 이질감이 없는 것을 보니, 그는 루시엔 카의 역할에 대체할 수 없는 배우가 되어준 듯하다.
"인생이 시작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
루시엔이 영화 초반에 앨런에게 내뱉은 대사 중 하나이다. 모든 청춘이 그렇겠지만 그들의 모든 시작은 아름답고, 또 창조적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I'm only good at beginnings."
이 두 가지 대사는 킬 유어 달링의 104분이라는 시간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모든 시작과, 그 시작에 숨어있는 파괴성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잊힐까 두려워 그렇게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또 창조하고, 표현해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었던 비트 제너레이션 세대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예술과 사랑은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지평선 같다. 그렇지만 삶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말 중요한 순간에 'Kill your darlings"라는 이 영화의 제목을 실현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2018.02.03
(이미지 출처: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9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