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닉워터와 소주를 마신 오후 10시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은 늘, 마음에는 좋다.
by Another Kind of Mar 28. 2016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은 늘, 마음에는 좋다.
술이 그러하고, 담배가 그러하고, 커피도 그러하고, 그리고 나쁜 애인이 그러하다.
그 날은 적당히 추웠던 어떤 날이었던 듯하다. 쫓기는 듯한 일상에 피로 곰이 셀 수 없이 어깨 위에 올라앉아 단 한 마리도 내려올 생각을 않던 날들에 친구와의 술 약속까지 있던 평일이었다. 너무 피곤해 약속을 깰까 몇 번을 고민했지만 그 유일한 마음의 위로, '술'이 나를 겁나게 유혹했고, 난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위해 (서라는 핑계를 위해).
어두컴컴한 조명이 나를 위안해 주는 이자카야에서 자극적인 안주와 술 한잔으로 오늘의 피로를 잊어볼까 하여 동네 근처의 이자카야를 검색했고 그 이자카야에서 토닉워터와 소주를 섞어 마신 한 블로거의 글을 읽게 되었다. 그래, 과일 맛나는 소주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고 오리지널도 후레쉬도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청량한 맛의 토닉워터와 소주를 함께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이자카야에 들러 나의 작은 결심을 실행할 생각으로 토닉워터에 소주를 시켰다. 친구는"그렇게 마시다가 너 확 간다"라는 경고를 했지만, 확 가는 것도 익숙한 나이가 되었기에 결심한 바를 실행했다. 그렇게 마신 토닉워터 + 소주는 아주 딱 이었다. 무언가 인공적인 향이 가미되지 않은 적절히 달달 하면서도 자꾸만 찾게 되는 중독성이 강한 맛이었다. 질리기 전까지는 당분간 이 레시피를 찾게 될 것 같았다.
‘쿡방, 쿡방’ 거리며 온 세상이 요리를 찾아 헤매고, 요리하는 남자를 찾아 헤맬 때, 나는 왜 남들이 요리해서 먹는 것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겐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이었겠지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먹는 것보다는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인 듯하다. 왜 아직까지 ‘먹방’은 있지만 '마시는 방송'은 없지 않았는가 -
평소에도 밥은 굶을지언정 카페에 가고 술을 마시고 하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내가 먹는 것보다는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먹는 것에 대한 칼럼을 쓰는 사람의 글이 SNS 여기저기에 돌아다니는 것처럼 마시는 것에 대한 칼럼을 누군가가 쓰게 된다면 나는 무조건 그를 팔로잉하고 그가 하는 모든 실험을 따라 해 볼 것만 같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토닉워터에 소주를 타 마시던 그 날의 기억으로 돌아가자면, 다행히 정신이 순식간에 사라질 정도로 많은 양을 마시지 않은 나는, 소주의 달달한 맛과 알딸딸함을 한꺼번에 느끼면서 기분 좋게 그 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늘 몸에 좋지 않은 것은 마음에는 좋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 여전히 마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