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ype, my type, my type

by Another Kind of

그렇고 그런 티브이 프로그램들에 질린 터, 가끔 다큐멘터리나 세계여행 프로그램과 같은 소위 말하는 '노잼' 프로그램을 찾아보곤 한다. 너무나 익숙해진 프로그램들과는 좀 다른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의 노잼에서 꿀잼을 맛보곤 하는데, 그런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EBS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아, 사실 스페이스 공감은 이미 유명한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노잼'의 영역에 넣기에는 너무 다양한 인디밴드, 가수들이 다녀간 탓에 이렇게 말하기는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또 대중적인 프로라고 말하기에는 좀 뻘쭘해지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 날도 퇴근을 하고서는 뭔가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나를 좀 달래고 싶은데 딱히 볼 것도 없어 채널만 마냥 돌리고 있었다. 공감이 문득 생각이 나, 다시 보기를 눌러 어떤 가수를 또 새롭게 체험해볼까 하다가 '출연: 이스턴 사이드킥'이라는 문구에 잠시 리모컨을 멈추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좀 아는 (예전 남자친구가 좋아했었던) 밴드였기에 호기심으로 리모컨을 꾹 눌렀다.


오랜만에 새 앨범을 냈다고 한다. 특별히 장르를 가리긴 좀 그렇지만 개러지 록 정도가 가장 비슷하겠다. 평범하지 않은 가사와 멜로디가 호기심을 끌었다.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도 내 호기심을 끌었던 것은 잘생긴 기타리스트와 베이스였다. 특히 기타리스트는 수염을 길렀고, 그건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길게 이어진 스타일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염이었다. 좀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수염과는 반대로 옷은 깔끔한 화이트 셔츠였으며, 단추는 적절하게 두 개 정도 풀어헤쳐져 있었다.


이럴 수가! 이렇게 적절하게 내 스타일인 남자를 찾기는 매우 힘들었는데. 무엇보다 그 깔끔함과 지저분함의 적절한 조화가 내 흥미를 자극했다. 게다가 빠른 비트의 기타를 정신없이 취한 채로 연주하는 그 모습이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한 듯 보였다. 아, 그들의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에 대해 운운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 뭐, 음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할 만큼 그렇게 전문적인 안목을 갖지 못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자꾸만 그에게 시선이 가는 것을 참을 수는 없었다. (이스턴 사이드킥의 음악은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잔잔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들의 음악은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락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으며 시끄러운 음악도 괜찮은 분이시라면 들어보시길,, )


공연을 티브이로 끝까지 감상하고서는 그 감동을 잊지 못해 유튜브를 뒤적뒤적하며 그를 찾아 헤맸다. 밤이 깊어가고 몇 개의 영상을 보다 보니 새벽이 훌쩍 가까워져 왔고,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기에 일찍 자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영상 찾아보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피로감에 자꾸만 눈이 감겨왔지만 오랜만에 좋아하는 어떤 것을 찾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날 밤은 다른 날보다 조금 푹 잤던 것 같다.


청춘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고, 새로운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 그렇게 안정되어가는 시기가 조금씩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그건 곧 재미와 호기심과 새로움이 줄어들어간다는 안타까운 얘기이기도 하기에 감사하기도 한 안정감이 때때로 미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씩 이렇게 찾아오는 호기심 가득한 호감이 새로움과 즐거움을 가져다 줄 때면 아 그래 아직 나 살아있어 하는 기분을 갖게 된다. "완전 내 스타일인 기타리스트 찾았어!"라는 쓸데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런 사소함이 매일같이 버텨내야 하는 하루하루를 위로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기타리스트 나랑 동갑이던데 - 어떻게 개인적으로 만날 방법 없을까? 아직도 뜬구름 잡는 걸 보니, 청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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