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살기
7월 7일
나는 의무감으로 글을 적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 일 목록 속에 있다는 이유로 쓰고있는 이 글도 언젠가 돌아본다면, 아무 기록도 없는 것보다는 하루를 의미있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적는다.
요즘은 말 그대로 "찜통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찜통 속을 걷는 것처럼 덥고 습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찜통의 뚜껑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들여보내줄 존재가 없기에, 습한 더위 속에서 그져 견디는 수 밖에는 없다.
물론 에어컨이라는 좋은 문물이 집집마다 달려있다.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다. 저녁마다 에어컨을 틀고 거실에 모여앉아 티비를 볼 때면 평범한 일상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왠지모를 승부욕이 있어, 한여름에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고 하루를 보내면 내가 더위를 이겨냈다는 이상한 뿌듯함이 생긴다. 사실 집에 혼자 있는 오후시간에는 빈 집에 에어컨을 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전원 버튼을 쉽게 누르지 않는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더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거실에 있는 온도계를 방에 옮겨봤더니, 벌써 31도를 돌파했다. 거실에 있을 땐 29도였는데, 그 몇시간 사이에 더 더워진 것인지, 내 방이 유독 더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잘 있었는데 이제와서 에어컨을 켜는 것도 더 아깝다고 생각된다. 가족들이 다 있을 때면 몰라도 혼자 있을 때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빈 집에 에어컨을 켜는 것 보다는 카페에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엄마와 단둘이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라, 엄마와 카페 데이트를 즐길 생각이다. 밖은 여전히 습하지만, 카페 안은 시원하기 때문에 상상만 해도 벌써 냉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엄마의 퇴근까지 30분 전. 글을 적고, 냉수마찰을 한 뒤 집을 나서려고 한다. 그 전까지 지금 나의 감정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사실 이 글을 시작했는데, 요즘 하는 생각들을 조금 이야기하고 글을 짧게 마치려고 한다.
나의 예전 글에도 종종 언급되었듯, 나는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있다. 다른사람들이 보기엔 이제 고작 한 학기를 다닌 새내기지만, 종강을 하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맴돈다. '역사란 무엇일까?' 조만간 이 주제에 대해서도 깊게 글을 적어보고 싶어 지금은 생각을 모으는 중이다. 대학교 역사는 고등학교 역사와 많이 달랐다.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고 머릿속에 들어온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하는 것은 결코 역사가 아니었다. 대학에 와보니, 역사를 '평가'하는 방법과 사료를 '해석'하는 방법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같은 사료를 보고도 평가가 엇갈리는 사레를 여럿 배우며, 개인의 기준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는 것을 배웠다.
이 수업을 듣고 나니, 수업 내용이 오늘 날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상황을 보고 나서도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 뉴스에서 어떤 내용을 보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뒤바뀐다. 역사는 권력을 잡은 자들의 산물이라는 것이 어느정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역사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료들과 책은 누군가의 견해가 반영되었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 몇 백년이 흘러 현재가 역사가 되었을 때, 후손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 우리가 남긴 기록들을 보고 평가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할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내가 아는 것은 티끌만큼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학문을 배울 때, 우매함의 골짜기를 지나고 나서야 실력이 상승한다는 그래프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에 십분 공감한다. 나는 지금 우매함의 골짜기에 빠져있는 것 같다.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다. 오히려 이렇게 고민하고 생각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이 좋다.
그 무엇도 함부로 평가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역사 속 인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물들 그 누구라도. 방금도 이 글을 적는 동안 글을 지웠다 썼다는 반복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신중해지고, 내가 접하는 정보들이 사실은 왜곡된 형태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무엇에 대해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겠다.
정리되지 않는 단어들을 나열하여 글을 적으니, 아직도 선택되지 못하고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단어들이 많다. 과일이 익듯이 나의 생각이 더 익으면, 단어들을 모두 수확하여 나의 철학을 담은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생각이다.
글을 적는 사이, 방의 온도가 31.2도로 올랐다. 엄마의 퇴근시간도 1분 남았다. 이미 늦었지만 나갈 준비를 해봐야겠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무더위속의 나의 뇌가 유연해져 생각의 틀 조차 녹은 것 같아 뿌듯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