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은 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음

분리수거에 담긴 이야기

by 엠버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일때의 이야기이다.


우리반은 모든 학생들이 정해진 청소구역을 하나씩 맡아서 매주 돌아가며 청소를 하곤 했었다. 청소구역의 종류는 바닥 쓸기, 닦기, 창틀 닦기, 교탁 정리, 칠판 청소 등등 다양했는데, 그 중 나의 역할은 분리수거였다. 학기 초에 청소구역을 정할 때, 다른 역할들은 주 2회씩 방과후에 남아서 청소를 해야하는 반면 분리수거는 주1회만 쓰레기를 버리면 되는 역할이었다. 무엇보다도 분리수거는 수요일 점심시간에만 하기 때문에 방과후에 남아서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분리수거 역할을 정할 때 주저없이 손을 들었는데, 친구들은 분리수거가 가진 궃은 일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서 나와 친구가 둘이서 분리수거를 하게 되었다.


나와 함께 분리수거를 했던 친구는 초등학교 이후에 오랜만에 같은 반으로 만나 친해진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 "이렇게 좋은 청소가 어디있어? ㅎㅎ 우리 정말 잘 고른 것 같아"라고 얘기하며 새학기에 즐겁게 분리수거를 하러 다녔다. 나는 매일 밥을 같이 먹는 친구 8명이 있었는데, 매주 수요일엔 "우린 분리수거때문에 먼저 올라가볼게!"하며 먼저 급식실에서 나와 교실까지 뛰어올라간 다음, 교실의 쓰레기통을 정리해서 분리수거장으로 들고 나갔다. 우리학교는 분리수거장이 학교 뒤편 주차장에 있었기 때문에, 분리수거를 하려면 5층에서부터 계단으로 바구니들을 들고 내려와서 학교를 빙 둘러 걸으며 분리수거장까지 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분리수거 일이 그저 점심 산책처럼 느껴졌다. 사실 고등학교에선 건물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분리수거를 하는 동안 나는 양 손에 쓰레기봉지들을 들고 있었지만 친구와 수다떨며 즐겁게 학교를 산책하는 느낌이 들어 마냥 즐거웠다.


그러나 분리수거를 하면서 의외의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씻지 않은 채 버린 음료수, 물이 가득 들어있는 생수병, 내용물을 빼지 않은 아이스팩 등등 분리수거를 할 수 없는 물건들도 많았다. 사실 그런 물건들을 그대로 들고나가 분리수거장에 버려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나와 친구는 분리수거라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 버리기 전에 플라스틱 바구니를 손으로 뒤적거려보고 분리수거를 못 할 물건이 있다면 화장실에 가서 씻어오기도 하고 잘못 분리수거된 쓰레기들은 제대로 옮겨담아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 심지어 한 번은 분리수거장에 있던 삽으로 (생수가 들어있던)아이스팩을 모두 터트려 그 안에있던 물을 모두 빼낸 적도 있었고, 점심시간을 반납하면서까지 분리수거장에 20분넘게 서서 모든 페트병에 붙은 라벨을 제거하면서 버리고 온 적도 있었다.


우리는 누가보면 이 일을 즐기는 것처럼 기꺼이 해나가긴 했지만, 중간중간 하기 싫었던 적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너희가 하는 일은 쉬우니까 이것저것 더 해야한다며 대청소를 할 땐 일이 추가되는 경우도 많았고 수요일엔 점심시간 공부나 친구들과의 시간을 포기해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분리수거를 하는 길에 종종 마주쳐서 우리의 노력을 알아봐주시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인정이 나에겐 소소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도 같다. 특히 우리가 페트병 라벨을 떼는 모습을 옆에서 보시고 "모든 학생들이 이렇게 분리수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ㅎㅎ"하시며 칭찬해주시던 한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말씀에 보람을 느끼고 힘을 얻어 그 분리수거장에 잘못 버려진 종이 쓰레기들까지 전부 다 가지고 가서 종이 수거장에 버리고 왔던 기억이 난다. 그 과정에서 너무 욕심내서 많은 종이를 담는 바람에 바구니가 무거워져서 세걸음 가고 쉬고, 세걸음 가고 쉬고를 반복하며 이동했었는데, 이런 나를 보고 이 무거운걸 혼자 가져가냐며 한손으로 번쩍 나의 짐을 들어주셨던 교감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에서 봉사시간도 없이 하는 교실청소를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완벽하게 분리수거를 하고 온 날엔 엄청난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고 점점 이 일을 즐겼던 것 같다. 주변사람들의 인정도 있었지만, 내가 우리반의 구성원으로서 한 부분을 잘 담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더욱 보람차게 했다. 남들이 보기엔 궃은 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매주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산책하듯 매주 수요일을 보냈던 나의 작은 일상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이전 01화나는 뉘우치지 않을  나의 하늘을 꿈꾸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