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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er Choi Aug 31. 2023

아부다비, 국제기구 인턴의 추억 (2)

에너지 컨설턴트가 될 때까지


 나는 겁이 많다. 귀도 아주 늦게, 그것도 한 개밖에 못 뚫었고, 라식 수술도 못했다. 스무 살이 되도록-사실 아직도-귀신이 무서웠고, 무서운 영화는 절대 혼자 못 본다. 사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내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데 있어서 만큼은 겁이 없었다. 그리고 여태 그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


아부다비를 가겠다고 결정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퇴사를 통보하고, 퇴사일을 확정하고,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과 송별회를 했다. 그 때 사실 나는 아마 가서 6개월이 아니고 더 오래 못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인생은 너무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나는 그 기회를 늘 수락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송별회 때의 귀여운 케이크


 다만 가장 어려운 것은 코로나였다. 전세계가 한 달에 두 세번씩은 입국 조건이 달라질 때였다. 아부다비 입국을 한 사람이 많지도 않았으니 정보를 찾을 길이 없었다. 외교부에서도 그러한 디테일을 다 챙겨주지는 않았기에 출국하는 날까지 계속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가 문득,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영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니었고, 손짓발짓하면 되겠지 하는 편한 생각이었다. 사실 더 이상 신경쓰면 머리에 과부하가 올 것 같았던 것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스트레스를 덜 받기 잘했다. 입국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국날, 부모님 그리고 동생과 함께 공항을 갔다. 적막한 공항은 처음 봤다. 아부다비를 간다고 하니 출국 수속 카운터에서 직원들이 당황하면서 '아부다비 갈 수 있는 거에요 지금?' 하고 비자를 연신 확인했다. 거의 1시간 동안 마침내 '특별비자'라는 것을 인정받고서야 출국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부모님은 자랑스러워 하시면서도 걱정했고, 걱정하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그렇지만 출국장의 좁고 긴 게이트 앞에서 가족 셋이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면서 배웅해줄 때는 오로지 걱정밖에 보이지 않아 마음이 뭉클했다. 


 비행기는 거의 혼자 전세낸 듯이 쾌적하기 그지 없었다. 좌석 세 개에 길게 누워 가는 내내 잠을 잤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세상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해서 격리 숙소 가는 길 


낮은 건물들, 야자수, 그리고 한국과 뭔가 다른 밤 하늘. 


공기마저 낯선 그곳, 아부다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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