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섬 에서의 마지막 날.
일행들과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걷다 보니 바다가 보이는 작은 카페 앞에 멈춰 섰다.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카페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잠시 기다렸다.
다행히 창가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예쁜 카페라테와 바나나빵을 주문하고
커피 향을 맡으며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창밖에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 위를 오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피부색,
다양한 언어,
각자의 리듬으로 입은 옷들.
한자리에 앉아 세계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창밖의 풍경을 지나
카페 안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대화들이 흘러가고,
간혹 들리는 영어 몇 마디에 귀가 괜히 반가워졌다.
언어를 알 수 없어도,
그들의 표정과 손짓, 웃음만으로도
그들의 대화의 온도는 충분히 느껴진다.
우리는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서로 오해하고 답답해하는 일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언어를 써도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낯선 곳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여행이 주는 조용한 선물은
이런 깨달음 인지도 모르겠다.
카페 창밖,
바다가 보이는 길 위로
형형색색의 자전거들이 소리 없이 지나간다.
전기 오토바이는 고요하게 흘러가고,
말이 끄는 마차의 고무 클랙슨 소리 뒤로
말발굽 소리가 박자에 맞춰 따라온다.
그 길 위를 여행자들이 걷고 있다.
슬리퍼, 샌들,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
그리고 맨발로 가볍게 걷는 사람들.
걷는 속도도 방향도 제각각이지만
신기하게도 누구 하나 부딪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비켜주고,
누군가는 잠시 멈춰 기다린다.
커다란 여행 가방과
머리 위로 올라온 배낭 사이에서도
어떤 충돌도 없이 스쳐 지나간다.
자동차가 없는 이 섬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풍경을 보여준다.
기도 시간이 되면
마을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는
이곳의 배경음악처럼 들린다.
걷는 게 자연스럽고,
타투가 특별하지 않으며,
비키니만 입고 있어도,
물에 젖은 옷을 입고 다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어떤 옷을 입었든,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
이 낯선 자유로움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낡은 골목의 허름한 집들이,
거리에 가득한 이국적인 음식 냄새가
이제 익숙해졌다.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고,
걸음의 방향이 달라도
부딪히지 않는 세상.
속도보다 여유가 먼저인 곳,
겉모습 보다 마음이 더 중요한 곳.
이곳의 신비로운 편안함에
천천히 동화되어
더 가볍고 편안한 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