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퇴근 후 밤에라도 떠나고
자다 깨서 새벽에라도 강원도로 향한다.
그러나 바다에 뛰어들 만큼
용감하진 않았다.
그저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이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탁 트인 수평선을 가만히 눈에 담거나,
발끝으로 파도를 살짝 느끼는 정도의 거리.
바다는 늘 내게 위로가 되어 주지만,
조금은 두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바다가 화가 나면 매우 무섭다는 것을
직접 봐서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내가
길리 섬에 도착했을 때부터
바닷속을 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댔다.
바다를 좋아한다면서,
정작 바닷속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자극했다.
마침내
물안경을 쓰고,
구명조끼를 조여 매고
나는 바닷가에 섰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생각했다.
‘정말 괜찮을까?
물속에서 당황하면 어쩌지?,...
두려움은 언제나
도전보다 앞서 나타난다.
하지만 그날의 바다는
너무나 맑고 평화로웠다.
무서움보다 설렘이 먼저 찾아왔다.
바닷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처음엔 호흡이 어색했고,
코로 물이 들어올 때마다
괜히 겁이 났지만,
바다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받아주었다.
물안경 너머로 펼쳐진 세상은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말없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빛에 따라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깔의 물고기들이
새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 순간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건 꿈일까?’
눈앞의 풍경이 너무 신비로워
숨을 참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그저 조용히 그 공간에 머물며
그 세계 안에 나를 맡겼다.
그때,
기적처럼 바다거북이가 나타났다.
느릿느릿,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평화로운 모습으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거북이와 가까워질수록
놀라움과 반가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한참을 따라가고, 바라보았다.
아쉬움을 남기고
바다 밖으로 나왔을 때,
손발에 작은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물속에서 힘을 주어 버둥거린 탓에
온몸이 여기저기 뻐근했고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새로운 것에
나를 밀어 넣었고,
그 안에서 놀라운 감동을
마주했다는 사실이
상처보다 훨씬 더 크게 남았다.
그저 한 발 내디뎠을 뿐인데
그 너머에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세상이 있었다.
여행은 늘 그런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나를 던져 놓는 일.
그 안에서 우리는
익숙했던 감정을 벗고
새로운 감각을 맞이하게 된다.
낯선 장소에서 만난
낯선 감정과 감각은
나에게 조용한 자양분이 된다.
길리의 바다를 통해서
내가 생각했던 나보다
조금 더 용감했고
조금 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깊고, 두렵다.
하지만 그 깊이 너머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상처를 감수하고서라도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장면들이 있다는 것도...
나는
두려움을 넘었고
그 너머에서
반짝이는 바다를 만났다.
그리고 바다 안에서
나는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던 용기가 자라나고,
내 안의 빛도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