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신발, 이어진 자유.

by Amberin

끊어진 신발, 이어진 자유.


길리 섬은 조용한 듯하나 북적였고,

어지럽게 보이지만

질서가 흐르고 있었다.


자전거, 마차, 걷는 이들까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마을에서 느낄수있는

리듬 같았다.


해변을 따라 막연히 걸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평행하게 나란히 걷던 그 순간,

왼쪽 발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고개를 내려다보니 샌들 끈이 끊어져 있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어쩌지?' 하면서도

'그냥 가지 뭐'라는 마음이 들었다.


절뚝거리며

멋진 바다를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른쪽 발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샌들 밑창이 갈라져 떨어져 버렸다.


너무 웃음이 나왔다.

엉망이 된 샌들을 질질 끌고

일행들에게 보여주니

빨리 신발을 사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신발의 운명도

나의 계획도 내려놓는 수밖에 없구나,... 하고

신발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맨발로 걸어 보기로 했다.



일부러 선택한 건 아니지만,

왠지 기다리고 있었던 순간 같기도 했다.


길리 섬은 외국인 여행자나 현지인들이

맨발로 걷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른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모래사장 카페에 앉아

잠시 바다를 바라보며 쉬기로 했다.

발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고운 모래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바다를 바라본 채

발끝으로 장난을 치고 있으니

작은 재미가 생각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건 위로였다.

인도 위의 보도블록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놀랍도록 편안했다.


하지만 곧, 뜨거운 아스팔트와

돌멩이가 깔린 비포장도로의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걸음을 멈췄다.

흙길이 시작되자,

맨발의 피부가 처음으로

땅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촉촉한 흙의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울퉁불퉁한 돌이 흐트러져 있는 길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땅을 보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잠시 멈추기도 하면서
오로지 나의 발만 바라보며 걷다 보니

마음의 조급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발바닥이 따갑고 많이 아팠다.

재빨리 발을 씻고 나서

발바닥을 확인해 보니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 순간, 아주 소소한 안도감과 함께

이런 말이 나왔다.

“아~, 다행이다.”

생각해 보면 아가였을 때 이후로

맨발로 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맨발은 언제나 집 안의 영역이었고,

바깥세상은

늘 신발을 신어야만 안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

갑작스럽게 맨발로 걷게 되었던 그 순간은

불편함보다 자유로움으로 더 진하게 남아 있다.


신기하게도 여행 안에서의 돌발 상황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기억된다.

짜증 나거나 민망할 수도 있었던 순간인데,

‘여행이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어느새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는다.


오늘의 길리 섬에서,

끊어진 신발은

나에게 맨발이라는

작은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오래도록 기억될 감각 하나를 얻었다.


맨바닥을 걷는 동안

발끝에서 느껴지는

햇살을 머금은 모래와 바람.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지금도 발바닥 어딘가에 남아 있다.

어쩌면,

여행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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