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춘 곳에서 내가 피어났다.

by Amberin


잠시 멈춘 곳에서 내가 피어났다.


여행이 끝나 간다.


마음에 오래 남아 있던 뜨거운 햇살과

피부에 느슨하게 감기던 바람,

매일 아침 아무 생각 없이 듣던 파도 소리도

이제는 조용히 인사를 건넬 시간이다.


이번 여행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떠난 길이 아니었다.

많은 경험을 해 보고 싶은 마음도,

많은 것을 보고 싶은 마음도 아닌

그저, 쉬 어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선택한 곳이다.


아주 오랜만에

멍하게 있어도 괜찮았던 날들을 보냈다.


아침에 조금 일찍 눈을 떠

바다 위에 번지는 하늘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낮에는 해변을 걷다가

바다에 몸을 맡겨도 보고,

저녁에는 고요하게 일몰을 바라보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일행들과 함께한 하루를 꺼내 놓으며

별것 아닌 이야기에 웃고,

사소한 수다를 오래 늘어놓았다.


아주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이었는데,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내 속도를 되찾고 있었다.


몸은 여전히 피곤했지만,

마음은 전보다 한결 가벼웠고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일주일은

아주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다.


처음엔 서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지만

어색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고,

앞서지 않으며,

각자의 결을 존중하던 그 분위기가

이 여행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말없이 물을 건네고,

누군가는 웃음으로 공기를 풀어주고,

또 누군가는

그저 옆에 조용히 있어 주었다.


선셋이 내려앉은 바닷가를

말없이 함께 걷던 순간들,

바닷속에서 눈을 마주치며 웃던 시간,

맛있다며 접시를 밀어주던 손짓들.

그 모든 장면에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다정함이 스며 있었다.


여행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마음이 조금씩 묘해진다.


조금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과

이제 돌아가도 괜찮겠다는

아쉬움과 설렘이

나란히 마음에 머문다.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늘 이런 감정이 남는 것 같다.


문득,

익숙한 향기,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

나에게 편안한 감각이 깃든 공간이

그리워지며

이 여행이 나를 조금은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조금 덜 급해도 괜찮고,

조금 비워도 무너지지 않고,

조금 느리게 걸어도

삶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앞만 보고 달려야 할 것 같던 나에게

이 여행은

“잠시 멈춰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은

생각보다 다정했고, 깊이 있게

내 안에 남아있다.


앞으로 또 흔들릴 날이 오겠지만,

그때, 오늘의 이 마음을 조용히 떠올려 보려 한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이미

조금 다른 나로

다시 걸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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