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어, 쉼표 하나 찍어본다.

(이제야 찍어보는 온전한 쉼표)

by Amberin

용기 내어, 쉼표 하나 찍어본다.

(이제야 찍어보는 온전한 쉼표)

(이제야 찍어보는 용기 내어, 쉼표 하나 찍어

몇 주 전부터 ‘지구 마블 세계여행’이란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다.

별생각 없이 리모컨을 들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계속해서 누군가의 여행길을 뒤쫓고 있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서툰 발걸음으로 길을 헤매다가 어느 순간 웃음을 터뜨릴 때,

그리고 예상치 못한 풍경 앞에서

말없이 멈춰 서는 모습들이 나를 묘하게 끌어당겼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지금, 여행이 몹시 고팠구나.


나도 모르게 여행 프로그램을 찾아 헤매던 모습은,

내 마음이 보내는 간절한 신호였다.


몸과 머리는 일상의 속도에 맞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한참 전에 짐을 꾸려 떠날 채비를 마쳤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따라 간밤에, 충동처럼 발리행 티켓을 예매해 버렸다.
출발을 불과 5일 앞둔 시점이었다.

놀랍도록 빠르게, 그리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사실 여행에 대한 갈증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 이후 나만의 ‘진짜 여행’이라 부를 만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강원도, 제주도, 전라도, 경상도, 등 국내의

아름다운 곳들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뭔가가 뚫리지 않는 듯한 답답함은 늘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나에게 여행은 단순한 ‘어디론가 떠나는 것’ '장소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낯선 곳에 발을 디딜 때마다, 잠들어 있던 설렘이란 감정이 깨어난다.

익숙한 길이 아닌, 처음 걷는 골목에서 나는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새로운 언어와 문화, 낯선 음식 속에서 비로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무엇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피곤함보다 조금은 성장한 나를 마주하게 된다.

두려움을 뚫고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는 뿌듯함,

광활한 자연 앞에서 느낀 인간으로서의 겸손함,

그리고 삶을 잠시 멈추고 바라볼 수 있었던 고요한 순간들 덕분이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은 조금 더 특별할 것 같다.
아무런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관광지 리스트도, 미리 계획한 루트도,

‘여기쯤 가면 인생 샷 나올 거야’ 같은 기대도 없다.


처음엔 그 무게획이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충 일정은 세워야 하지 않을까?’

‘너무 무계획이면 시간만 버리고 오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 익숙한 걱정들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모든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쉬는 것” 이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이래도 괜찮을까’라는 의심도 모두 캐리어 밖에 두고 떠나려 한다.


어쩌면 아무 계획도 없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현재”에 머물게 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살아갈 때는, 하루하루가 촘촘히 채워져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 촘촘함 사이로 나도 모르게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촘촘함을 비워보려 한다.


바닷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고,

햇살이 예쁘면 그 자리에 머물며 햇살의 온기를 느껴보고,

맛있는 냄새가 나는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걸어도 보고,

설령 그것이 하루의 전부가 되더라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


쉼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서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순간에 나를 맡겨두는 일이다.


그러니 이번 여행은, 나 스스로에게 내리는 작은 “휴전 선언”이다.

모든 것을 잠시 STOP!. 하기로 한다.


이삿짐 정리 하던 것도 잠시 중단,

새로운 일을 알아보는 조급함도 잠시 중단한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더없이 자유롭게,

오직 나를 쉬게 해 주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다시 돌아올 때쯤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져 있지 않을까.

숨이 깊어지고, 마음이 말랑해져 있을지도,...

그저 그만큼의 여유만 생겨 돌아와도

내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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