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유 없이 웃음이 터지는 날이 있다.
바로 오늘 같이 맑은 아침 햇살을 받는 날이면
그냥 웃고 싶어진다
문득 머릿속에서 ‘톡’ 하고 튀어나온 한 장면이
나를 무장 해제 시킬 때.
그 장면은 대부분 아주 사소하고, 엉뚱하며,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순간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진심으로 웃긴 순간들이다.
한 십 년 전의 어느 날 오후.
평소처럼 피아노 수업 중이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는 방에서는 보통 건반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오는데,
그날따라 한 아이의 방에서는 한참 동안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요 녀석 또 산만해졌군’
그런 생각이 스쳤고,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혹시 우는 건가? 해서 조심스럽게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아이는 하얀 양말을 신은 채,
발가락 사이사이에 노란 고무줄을 하나씩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얼굴로, 엄청 중요한 일처럼 몰입해서.
고무줄은 양말 위로 쫙쫙 늘어났다가
또 탁,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노란 줄이 발가락 사이를 무늬 놓으니 새로운 신발 같았다.
피아노는 안 치고 발가락에 고무줄 끼우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큰소리로 한참을 웃었다. (눈물이 나고 있을 정도로...)
한참을 웃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와서 구경하더니 함께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나에게 큰 웃음을 준 그 친구에게 고마워서,
“선생님 이건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웃고 싶을 때마다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아이는 자랑스럽게 발을 더 들이밀었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지금도 그 사진은 웃음이 필요한 날을 위해 고이 남아 있다.
지금도 가끔 꺼내 보면 웃음이 먼저 터진다.
그 순도 높은 장난기, 엉뚱한 창의력,
그날 나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무엇보다 그 순간을 마주한 내 하루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이런 웃음 버튼들은 꼭 그날만 유효한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감정의 결이 낮은 날에도,
불쑥 찾아와서 나를 구해주는 비밀 무기처럼 작동한다.
어느 날 전철 안에서 들은 낯선 아이의 대화가
생각보다 너무 철학적이어서 혼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엄마, 사람도 배터리 있으면 좋겠다.
충전하면 기분 좋아지는 거.”
그 말이 내게 너무나 기발하고 귀여워서
그날 하루는 충전된 기분으로 보냈다.
이런 장면들은 모두 내 안에 저장되어 있다.
슬플 때 꺼내 보는 웃음 저장소.
사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항상 거창하고 진지한 방식일 필요는 없다.
어떤 때는, 그냥 웃긴 사진 한 장.
어떤 때는, 친구의 어이없는 표정.
그런 사소한 기억 하나가 우울의 기세를 툭 꺾어준다.
내가 가라앉을 때, 혼란스러울 때,
이런 웃음 버튼은 내 감정의 숨통을 틔워주는 소중한 장치가 된다.
그것은 늘 곁에 있으면서도,
내가 찾지 않으면 조용히 숨어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웃음 버튼을 자주 눌러본다.
기억 속에서 꺼내보기도 하고,
사진첩에서 다시 꺼내 웃어보고,
친구들과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다시 해 보면서 함께 웃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을 너무 붙들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흘려보낸다.
웃음은 가볍게 시작되지만,
그 여운은 오래 마음에 머문다.
울음을 애써 꾹 참고 애써 견디는 날보다,
웃음을 떠올리는 순간이
마음을 더 부드럽게, 단단하게 감싸줄 때가 있다.
내 인생의 웃음 버튼은 지금도 대기 중이다.
발가락 사이에 낀 노란 고무줄처럼,
어디선가 나를 또 한 번 구해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