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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Nov 14. 2021

엄마의 고향찾기

나의 여행 _04

소설가 황석영의 작품 중 '삼포 가는 길'이 있다. 삼포가 고향인 노동자 정 씨는 기억 속 아름다운 곳인 삼포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곳이 공사판으로 변했다는 사실에 마음의 고향을 잃고 절망하는 인물이다.


왜 그동안 엄마와 대구에 가볼 생각을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제서야 엄마와 대구에 가보기로 했다. 김천이 고향인 엄마는 대구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고 했다. 나는 기차 안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엄마의 이야기를 띄엄띄엄 들었다.


오전 10시 10분, 동대구역이다. 역 규모는 컸고 역 주변은 번잡하고 화려했다. 나는 초행길이라, 엄마는 너무 변해버린 대구가 낯설어 둘 다 눈을 꿈벅이며 어리바리했다. 택시를 타고 엄마는 한결 짙어진 사투리로 '수창국민학교'에 가자고 했다. 택시는 시간을 달려 1950년대 초반으로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린 곳은 2021년 11월 13일이었다. 학교는 크고 넓었고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었다. 택시기사 말로는 대구에 아파트 공사장이 150군데가 넘는다고 했다. 1950년대에는 수백 수천 번을 학교 주변을 걸었을 엄마였겠지만 2021년의 엄마는 학교 문 앞에서 한 걸음도 쉽게 내딛지 못했다. 길은 변하고 뒤틀렸고 하늘은 낮아졌다. 학교 주변의 오래된 철공소들 뒤로 보이는 아파트 공사장은 퍽 위압적이었다.

엄마는 낯설어진 학교를 떠나 '굴다리'를 찾기 시작했다. 굴다리를 지나 등하교했다는 엄마는, 굴다리를 찾기만 하면 다시 1950년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어 물어 찾은 곳에 굴다리가 납작하게 숨어 있었다.

납작한 굴다리는 그러나 굽은 곳 하나 없이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엄마는 천천히 걸었다. 어두운 굴다리 안으로 얼핏 1950년대가 보이는 듯도 했다. 저쪽 밝은 곳으로 나가면, 그러나 다시 2021년이리라. 그리고 굴다리를 지나 2021년으로 돌아온 엄마는 예전에 살던 집터에도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하릴없이 다시 택시를 타고 서문시장으로 향했다. 정치인들이 자주 찾아 외지인들에게도 익숙한 서문시장에서 엄마는 오히려 활기를 되찾았다. 시장은 넓고 복잡해서 나같은 사람은 들어서는 순간 길을 잃을 게 뻔했고, 길을 잘 찾는 엄마마저 아까 보았던 점포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아무 좌판에나 앉아 묵사발을 먹었다. 대구 할매는 묵을 손으로 조물조물 해가며 썰어서 국물을 끼얹어 주었다. 묵사발 국물이 뱃속으로 짭잘하게 폭 가라앉았다.

먹고 기운을 좀 차린 우리는 동성로를 거쳐 동대구역 근처 신세계백화점으로 향했다. 엄마는 대구가 대한민국 3대 도시라서 서울과 진배없다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공사판이 되어버린 옛 집터와 들어가지도 못했던 옛 학교가  이만큼이나 번성한 도시의 모습이 되어 엄마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 씨의 고향 삼포와는 달리, 엄마의 고향 대구는 60년 동안 엄마를 기다리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로만 들었던 대구에 뒤늦게 엄마를 모시고 올 생각을 한 딸내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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