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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Dec 16. 2023

2023년 12월 16일

일상기록

추운 가운데 눈이 내리고 있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고 제법 많은 비까지 내리다가 이제 호되게 추워질 모양이다.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니 날씨가 더 매섭게 느껴진다. 계절은 그동안 축적해 놓았던 추위를 이제야 대방출할 기세인데.


일주일째 코감기가 낫지 않는다. 어제 다른 병원에 가보니 축농증에 급성 부비동염이라고 했다. 몸에서 특히 코가 취약한 나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이렇게 콧병을 앓는다. 그렇잖아도 날이 추워지면 눈치없는 코는 콧물을 뱉어내느라 정신없는데 한파까지 닥치니 조만간 내 코는 닳아 없어지게 생겼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휴지를 더 써야 코가 낫게 될까. 슬슬 바닥이 보이는 여행용 티슈를 보며 나는 여분의 티슈가 있음에 잠시 안도한다.


머리를 했던 기록을 살펴보니 마지막으로 머리를 했던 때가 지난 7월이다. 다섯 달이나 지났으니 그동안 머리가 그모양 그꼴이었나보다. 원래는 어제 오후 5시로 미용실 예약을 했지만 비도 오고 병원도 다녀오느라 오늘 오후 2시로 예약을 바꿨다. 날이 급격히 추워져서 나가기가 싫었지만 보기싫게 길어지고 곱슬도 올라온 머리를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두터운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미용실은 집에서 멀지 않다. 그 잠깐을 오면서도 콧물이 나서 미용실 들어가기 전에 코를 팽 풀었지만 미용실에 들어가니 다시 콧물이 또 났다.


머리를 좀 자르고 늘 하던 파마까지 끝내고 나면 3시간이 훌쩍 지난다. 미용실 예약할 때 비용을 미리 결제하지만 추가요금이 그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붙는다. 추가요금이 더 비싸네요..하니 원장은 영수증 뒷면에 숫자를 현란하게 써 가며 왜 이 비용이 붙는지를 설명해 준다. 들어도 잘 모르겠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나왔다. 어차피 다른 곳에 가도 비용은 비슷하다. 그래서 일년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정도만 머리를 하지만 그래도 돈이 많이 드니 머리를 잘라볼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세 시간에 걸쳐 머리를 하고 오니 배가 고프다. 이런 때 안 먹어야 살이 빠질텐데 하면서도 사발면을 먹겠다고 전기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음식이 맛있으면 살이 찐다는데. 애써 사발면을 천천히 먹으려 노력하며, 그러나 후다닥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미리 식탁에 꺼내놓아 차갑지 않은 귤을 먹는다. 나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귤을 먹으려면 몇 시간 전에 꺼내놓아야 한다. 일전에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귤을 껍질까지 까서 먹기 좋게 갈라놓은 채로 차갑지 않게 내어 주셨다.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했지만 나는 그 귤을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내가 다니는 세종사이버대에서 주최하는 북콘서트와 종강모임이 있다. 몸이 이런 상태로 가 봤자 앉아있는 내내 코만 풀다 올 것 같아서 가지 않기로 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을 만나는 게 꺼려지고 만나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게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나를 힘들게 하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운 생각이 떠나지 않아 이 생각을 떨치려면 끈끈이 쥐덫에 잡혀 죽은 쥐를 떼어내듯 용을 써야만 한다. 그래, 썩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건 인정해야 하겠다. 하지만 현재 내 상태와 문제를 알고, 인정하고, 고쳐보려 애쓴다는 것은 나쁜 신호는 아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몇십 년을 살아야 하는데 늘 상태가 최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좋을 때가 있으면 안좋을 때도 있고, 나는 지금 좋은 상태는 아닌 것이고, 하지만 나아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게 중요한 것이다.


참고 참다가 보일러를 올렸다. 시간이 좀 지나면 집안에 온기가 돌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콧병도 나을 것이고, 머릿속 미운 생각도 시나브로 잦아들 것이고, 나는 또 나이를 먹을 것이고, 모든 것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내리는 눈이 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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