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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Feb 12. 2024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최재훈, 미래의창)

독서노트 _41

MBTI라는 성격 유형 검사 덕분에 '내향인'과 '외향인'으로 사람을 크게 나누는 일을 요즘은 흔히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향적'이라는 말보다는 '내성적'이라는 말로 성격을 표현하곤 했는데 어느새 요즘은 '내향적'이라는 단어를 훨씬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내성적이라는 것과 내향적이라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많이들 알게 된 듯하고.


나만 하더라도 내 성격을 표현할 때 '내성적'이라고 하곤 했다. 물론 이것 역시 누군가에게 말한 게 아닌, 나 스스로를 정의할 때 그랬다는 것이다.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이 누군가에게 "나 내성적(내향적)이에요!" 라고 말한다니, 그것처럼 웃기는 장면이 또 있을까.


성격이 내향적이라는 것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건만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여서인지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미 현 직장에 다닌지 10년이 되었고, 업무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졌으며 어느새 아는 사람도 제법 생겨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만 알바나 신규직원을 뽑는 곳에서는 아예 MBTI가 'E'형인 사람만 찾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 오랫동안 유행했던 혈액형에 이어 MBTI가 사람을 나누는 일종의 '계급'이 된 모양새다.


이 책을 샀을 때 나는 심적으로 좀 지쳐 있었다. H는 나를 좀체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다. 직장에서 만난 사이였건만 그는 공사 구별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편하고 좋으니까' 라는 명목 하에 정말 모든 것을 나와 함께 하려고 했다. 본인이 병원에 갈 때 나를 데리고 갔고, 본인의 종교를 강요했으며 내가 아파서 점심을 못 먹은 날에도 본인 일을 보러 남대문에 갈 때 나를 끌고 갔다. 점심을 싸왔다고 해도,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해도 "오늘 하루 희생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나를 끌어들였다. 손님이 오면 "고급 커피 드릴까요?"라고 하며 내가 개인적으로 산 커피를 집어갔다. "이제 커피 얼마 없는데.."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결국 내가 자리를 비운 날 커피를 또 마음대로 가져갔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월요병이라고는 없던 내가 월요병이 날 지경이었고 스트레스로 하루종일 속이 쓰렸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그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너무 내 안으로만 파고들어가는 내가 문제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산 게 이 책이었다.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하지만 회사 일이 바빠졌고 나는 다른 책을 먼저 읽느라 이 책을 결국 부서를 옮기고 난 다음에야 읽게 되었다. 전 부서에서의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거의 해소되었지만 내향적인 내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니기에 한번 읽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펼쳐 첫 부분을 읽자마자 나는 시쳇말로 '짜게 식었다.'


저자는 자신이 얼마나 내향적인 사람인지를 설명하며 그 예로 오래 전 버스를 탔을 때 어떤 남자가 갖고 있던, 밤을 가득 담은 비닐봉지가 터져 버스 안에 온통 밤이 굴러다녔던 사건을 써 놓았다. 그때 버스에 서 있었던 건 저자 혼자였지만 자신은 워낙 '내향적인' 성격이라 그 남자를 어떻게 도울 지 몰라 그냥 서있었다고 했고, 결국 버스 뒷좌석에 있던 다른 남자가 와서 사고를 수습했다고 했다.


나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타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돕는 이타적인 성격과 내향성을 이런 식으로도 연결하는구나 싶었다. 이타적인 사람은 누군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면 앞뒤 잴 것 없이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움직인다. 작은아들 밍기가 그렇다. 오래 전, 밍기가 4살쯤 되었을 때 가족모임에 갔는데 시어머니(밍기의 할머니)는 몸 오른쪽을 잘 못 쓰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왼손으로 불편하게 음식을 드시는 걸 본 어린 밍기는 그 즉시 작은 손에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떠서 할머니 입에 넣어 드렸다. 밍기는 예나 지금이나 꽤나 내향적인 성격인데도 그랬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어릴때부터 그런 편이었다. 남들 앞에서는 고개도 못 드는 부끄럼쟁이였는데도.


나는 그래서 이 부분을 읽고 저자가 성격을 분류함에 있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소싯적 본인의 과오(?)를 요즘 유행하는 '내향성'이라는 특성으로 무마하려는 것인지가 의문스러웠다. 그렇게 저자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이 생겨 버리니 그 이후의 내용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책 내용이 내향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내향인을 대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릴적부터 나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 분야 책을 참 많이 읽었다. 현재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세종사이버대에서 다음 학기에는 상담심리학도 같이 배워볼 예정이다. 그러나 심리학 책을 꽤나 많이 읽었음에도 오 이거구나 하는 책은 정말 드물었다. 그건 아마도 그만큼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고 파악하며 풀어내는 일이 어렵다는 방증 아닐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리라. 뼛속까지 내향인인 나 자신을 위해 야심차게 산 책이 내게 실망을 준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이 또한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거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역시 책은 인터넷 평만 볼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봐야 해! 라는 교훈도 다시한번 상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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