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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14. 2024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 돌베개)

독서노트 _40

나는 과학 서적을 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과학에 관련된 책은 꼭 찾아 읽었고 이해도 잘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에는 장래희망이 무려 '과학자'였다. 과학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랬고, 과학이 너무 좋아 '과학의 날' 노래를 외어 부르고 다닐 정도였다. 그랬던 나의 장래희망은 고등학교에 가서 수학을 포기하게 되면서 1차로 꺾였고, 이과를 선택해서 유기화학을 배우게 되면서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추억(?)이 가득한 수학의 정석

중학교 때까지 그럭저럭 해왔던 수학을 고등학교 가서 놓아버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고1 1학기 언제쯤이었던가, 방 안에 아주 커다란 바퀴벌레가 출몰하였고 놀라고 겁이 난 나는 보고 있던 수학의 정석을 집어던져 그 바퀴를 때려잡았으며, 그 일 이후 차마 수학의 정석을 더 펴보지 못하여 반강제적으로 수학을 놓게 되었다는 슬픈 (?) 이야기가 있다.(믿거나 말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날 수리영역 시험을 볼 때에는 내가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는 다 풀고 나머지 모르는 문제는 죄다 3번으로 찍었는데 그게 적중하여 고득점을 받는 데에 꽤나 도움이 되긴 했다.(그래서 나는 애들에게도 모르는 문제의 답을 찍을 때는 3번으로 찍을 것을 권한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과학자의 꿈은 완전히 기억 저편으로 들어가게 되고 나는 과학자와는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과학에 대한 흥미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틈나는 대로 과학 책을 사 읽었고, 책 속에 내가 기억하고 있거나 아는 부분이 나오면 그 옛날 학교에서 과학 수업을 받으며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기쁨에 가슴이 콩닥거렸던 그 시절의 기분을 다시 느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유시민이 쓴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목차부터 아주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과학 서적들은 모두 과학자들이 일반 독자들을 위해 '알기 쉽게' 쓴 책이었다면(저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의 책은 읽기가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특히 김상욱 교수의 책은!) 이 책은 저자 스스로의 말대로 '뼛속까지 문과'인 사람이 방대하고 깊은 과학의 여러 분야를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이해하고 노력하려 애쓴 끝에 내놓은 책이었다. 저자 유시민처럼 '생래적 문과'인 나는 저자의 이런 시도와 그 결과로 나온 이 책이 몹시 반가웠다.


책은 저자가 이해한 과학적 지식의 설명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평생을 인문학자(경제학자)이자 정치인, 작가로서 살아온 저자의 입장에서 과학적 진리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바라보고 해석하는 내용도 꽤 많았다. 그중 특기할만한 부분은 저자가 과학 혹은 수학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쓰다가 어느 순간 완전한 설명이나 이해를 포기(?)하고 '나는 여기까지밖에 이해 못 했다'는 식으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유시민의 책을 한두 권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서술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 것이라 생각한다. 유시민의 인문학 지식의 깊고 넓음은 자타가 알고 있는 것으로서, 그의 책은 언제나 깊고 명료했으며 확신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해박한 지식도 좋았지만 그 특유의 확신과 힘이 넘치는 분명한 어조도 마음에 들었다. 그랬던 사람인데 '잘 모르겠다'라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깔깔 웃었다. 그런 인간적인 면모가 재미있었고 반가웠으며, '나도 이 부분 전혀 이해 안됐는데 아저씨(?)도 역시 문과네요!'라는 식의 동질감이 느껴지는 게 참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전직 정치인이며 경제학자인 저자와 그가 쓴 책을 읽고 따라가기 바쁜, 지극히 평범한 내가 이런 공통점이 있다니!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저자의 '자기고백'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 지식을 설명할 때의 저자의 어조는 제법 신중하지만, 관점이 인간, 정치, 사회 등 인문 쪽으로 넘어가면 예의 힘있고 명료한 어조가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어조에는 지금보다 젊을 때 쓴 책과는 달리 유연함과 깊이, 포용의 여유가 담겨 있었다. 그건 아마 저자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나이가 들어서일수도 있겠지만 과학적 지식을 공부하고 그것을 인문학에 접목해 보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거만한 바보'를 면하기 위해서 뒤늦게나마 과학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고백을 읽고, 나는 여태껏 꽤 많은 과학 서적을 읽어왔지만 거기서 무엇을 얻었는지를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왜 적잖은 돈을 들여가며 과학 서적을 사 읽었으며, 그 독서에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그저 예전에 조금 알았던 얄팍한 과학 지식을 책에서 확인하고 '아직 죽지 않았군!'하며 기뻐하고 자만하는 데에 만족했던 것은 아닌가. 이 책을 통해 이제라도 내가 '거만한 바보'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유시민 아저씨, 감사!^^

'거만한 바보'가 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의 16쪽 이하를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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