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인 Apr 04. 2024

영원히 늙지 않을 그를 추억하며

일상기록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상대가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 나는 나를 모르거나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요만큼의 애정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들끓던 10대 20대 시절, 좀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나는 일단 그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탐색했다. 얼마간 지켜보다가 그 사람이 나를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나에게 '휴먼' 이상의 관심은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내 마음은 곧장 식었다. 나는 나에게 무심한 사람에게 열정과 애정을 쏟을 만큼 피가 뜨겁지 않았다.


그래서 어리고 젊었던 때에 또래들은 많이들 남자 연예인에 열광하고 있었지만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 '거의'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4월 1일, 46세의 나이로 거짓말처럼 세상을 저버린 그가 있었다.

얼굴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 연예인이 평범한 소녀인 나와 알고 지낼 확률은 로또 당첨만큼이나 낮았다. 게다가 그가 우리나라도 아닌 물 건너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만큼은 연예인을 소 닭 보듯 했던 내 마음에 피할 틈도 없이 훅 들어왔다. 언제부터, 무슨 일을 계기로 그를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어느새 그의 사진을 모으고 그가 나온 영화를 챙겨 보았으며 그의 노래가 녹음된 테이프를 사서 듣고 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관심도 갖지 않으며 좋아하지도 않는다' 라는 내 나름의 원칙이 왜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지, 왜 목련이나 벚꽃은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지, 왜 사람은 일정 시간 깨어있은 후에는 잠을 자야 하는지 따위처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응당 그리 되는 것이 마땅한 것과 같다면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열 다섯 살, 그리고 열 여섯 살 무렵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와 함께 '내가 그를 왜 좋아하는가'를 가끔,  아니 자주 생각했으나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책상 앞에 붙여둔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미지의 수 X' 가 되어 버렸다. 알아내기는 해야 하지만 결코 알아낼 수 없었던 답, X.


2002년, 영화 '이도공간' 에서 그는 울부짖었다. "이제까지 나는 단 한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어!" 영화 속 그의 미모와 우수어린 분위기는 여전히 범접 불가한 것이었으나, 반듯한 이마는 세월을 피해가지 못하고 젊은 시절에 비해 다소 넓어져 있었다. 그런 모습에 아쉬워하던 마음은 그의 절규를 들으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 이게 당신이지. 당신 어디 가지 않았구나. 그런데 난 과연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는 자신이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하면서, 나에게도 너는 과연 행복한 적이 있었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마치 그날을 고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만우절에 호텔 객실에서 뛰어내렸다. 왜 하필 만우절이었을까. 어린 남자아이들이 목덜미에 보자기를 둘러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수퍼맨 놀이' 를 하듯이, 만우절에 뛰어내리면 거짓말처럼 죽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걸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영영 만우절 거짓말이라고,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늙지도 죽지도 않은 채 살아있으리라 여기라고 그랬던 것일까.


주윤발, 양조위, 유덕화 등 쟁쟁했던 그 시절 홍콩 남자 배우들의 아름답던 색과 모습이 세월 앞에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2003년 4월 1일에 호텔 24층 객실에서 몸을 날려 영원한 자유와 젊음을 얻게 된 그를 애도하고 또 안도한다. 어느새 나는 그가 세상을 저버릴 때보다 더 나이가 들어 버렸지만 그는 내가 죽는 날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영원히 바람에 흔들리는 호수같은 눈과 서글픈 초승달같은 미소를 간직한 마흔 여섯으로 남아있을 테니까. '언제적 장국영이냐' 따위의 말을 그에게는 하지 않을 수 있어 참말 다행이다. 나의 영원한 리즈.

* 이 글은 4월 1일에 쓰려고 했다가 이제야 짬이 나서 쓰게 되었다. '최애'를 제 날짜에 추모하기도 힘든, 산다는 게 참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백꽃, 그리고 수선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