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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Jan 15. 2019

내일도 고요한 밤을 위해,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산문집 <우리가 보낸 가장 긴밤>

어른이 되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작은 것들이 더 소중해지고 더 커진다.


이석원 산문집,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왠지 모르게 귀여움이 느껴지는 책의 디자인이 먼저 눈길을 끌었던 책

제목 때문에 사랑 얘기가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사랑 얘기보다는 보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은 일기장을 읽는 느낌에, 이석원 특유의 정돈되고 깔끔한 문장 덕분에 편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여행가는 왕복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 했다가, 잠깐 설레기도 했다가, 슬프기도 했다가, 내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한 섬세한 감정과 표현들을 보면서 나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시간이 꽤 좋았다.




# 밑줄긋기

항상 하루하루를 이벤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들과 마주하고,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이 특별한 하루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는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하루가 대부분이고, 특별한 약속없이 집-회사를 왔다갔다 하고 집에 있는 주말들이 꽤 많이 늘었다. 예전같으면 재미없는 인생이라고 뭐라고 자꾸 찾으려고 했을텐데, 요즘들어 달라진 것은 이렇게 아무일 없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좋은 하루였다고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좋아하는 사람과 떡볶이를 먹고, 맥주를 먹고, 시덥잖은 농담과 고민을 주고받는 순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 작은 것들을 다룬 솔직한 산문집이 좋았다. 

_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작가의 말 중에서
누군가의 앞에서는 솔직히 드러내기 어려웠던 나의 부족함도, 수요일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금요일엔 엄마의 칠순 잔치를 하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주말이 늘어나는 삶에 대해. 삶의 전면이 아닌 단면에 대해. 어른이 되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작은 것들이 더 소중해지고 더 커진다.
_ 통(通)
나는 누굴 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당연히 상대도 그러지 않기를 가까울수록 더 바라고.  
그건 내가 복잡하거나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으로 판단되고, 규정될 수 있을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본 너는 그랬어.
_솔직할 수 있도록
어쩌면 삶 전체를 통틀어 좋게좋게 웃음과 예의로서만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이 공허한 인간관계에서, 나로 하여금 솔직함을 이끌어 내줄 수 있는 사람.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이를 만난다는게 얼마나 큰 복이고 행운인지를.
_카모메 식당
좋아 보여요.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는 모습이. 
그냥 하기 싫은 걸 안하는 것뿐이에요.
_어느 크리스마스의 기억
만남이란게 꼭 어떤 결론을 맺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이걸로 충분한거겠죠? 
아니,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니 이것도 결실이라면 결실일까요?
부질없는 추억담으로 오늘도 말이 길었습니다.
_어느 디제이와 피디의 이야기
그는 그렇게 숨길 수 없는 진지함과 깊이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얼마 후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점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던 건, 자신이 가장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남을 가장 열심히 위로한다는 사실이었다.
_행복
행복이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닌 대체로 작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사소하고 평범한듯 조이는 것들의 가치를 알고 지켜가기가 쉽지않으니 결국 핼복이란 가티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은 작은게 아니더라.
일상의 평화라는건 노력과 대가를 필요로 할만큼 힘겹게 지켜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것이더라
_알게 모르게 
친구건 연인이건 지인이건, 누가 내게 어떤 사람인가는 그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내 기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가 날 더 허탈하고, 씁쓸하고 외롭게 하는지. 
누가 날 진심으로 충만하게 해서 만남의 여운이 며칠은 가게 만드는지. 
_위로 
우리는 그저 비바람이. 치는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고 믿지만 않으면 된다.
_다짐 
네가 지금 꾸는 꿈들.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고, 최선을 다해도 미련이 남을 수 있으며, 아무리 노력하고 갈구해도 삶이란 건 끝내 피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는거라고. 
그게 실망할 일은 아니지만 어떤 이의 마음속엔 끝내 미련으로, 스스로에 대한 누추함으로 남아 그렇게 쓸쓸하게 남은 여생을 살가가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더 희망찬 내일에 대한 위로 대신 삶은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결국 그냥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현실적인 말들이 조금은 서글퍼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우리같은 보통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내일 하루도 고요한 밤을 위해서 잘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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