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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May 01. 2021

나는 나 자신과 잘 지내고 있을까? 이석원 <2인조>

Answer: Love Myself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잘 지내는 일이 나는 왜 그리 어려웠을까.

읽기 쉬우면서도 솔직함이 매력적인 이석원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글은 희망적인 메시지만을 던지지지 않기에 우울한 측면도 존재한다. 다섯 번째 책 <2인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변화해가는 그만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다.

<2인조>는 어느 순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보행이 힘들어지고, 25년 만에 다시 정신과에 가게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본인이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를 분석하고 더 나아지기 위한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그린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 당신도 할 수 있으니 같이 이겨내자, 라는 글을 쓰고 싶었으나 환골탈태까진 하지 못했다는 말은 이석원답게 솔직하다. 그렇지만 나 자신과 잘 지내기 위한 고민과 행동들을 통해 그에게 일어난 작은 변화들은 솔직하기에 오히려 더 희망이 된다.

내가 내 삶 전반을 돌아보고 고치고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저 한 개인의 비과학적 추정 따위가 아닌, 길고 꼼꼼한 의학적 탐색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의 반환점을 넘긴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다가올 남은 생을 도모하기 위해 써 내려간, 한 해 동안의 기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나 바로 지금 해야만 하는 그 일을 하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한없이 관대 해지는 것.

이 책에 쓰인 많은 이야기들이 평소 나의 성향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거절을 잘하지 못해 나보단 남의 기분 위주로 행동했던 것. 나 자신에게는 굉장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것. 제대로 쉬면서 살지 못하는 것..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살아온 나에겐 쉼표가 필요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금은 달라지기 위해 한 발을 내딛을 시점이라고 느껴졌다.

남들이 믿든 안 믿든, 저는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남이 나 때문에 실망하거나 불편해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필요하면 연기까지 하면서요. 저는 그런 내 행동을 거짓이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전 그걸 '예의'로 인식했으니까. 잠깐의 연기로 나나 상대나 어느 쪽도 상처 받지 않고 평화가 유지할 수 있다면 설령 거짓이라 해도 문제 될 것이 없었죠. 그런데 문제가 됐나봐요. 그 대가로 마음이 이렇게나 힘들어졌으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많은 일들을 하면서 때로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무기력함을 겪고 있다. 하루 종일 몸도 정신도 괴로워지는 날이 많아서 나아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얼마 전부터는 그가 변화를 위해 행동한 내용을 참고하여 매일의 할 일을 적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고 무엇도 하기가 싫어질 때면 아주 사소한 작은 일이라도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다.

노션에 치과 예약하기, 책 몇 장 읽기 등 매우 사소한 일들을 적고 하나씩 지워나가니 그날 하루 동안 내가 어떤 일들을 해냈는지가 보였고 다음 일을 해나갈 힘이 생겼다. 조금은 숨 쉴 틈이 생긴 기분이었다.

나의 비극이라면 비극은, 나라는 사람은 게으르기엔 너무 많은 열정과 욕망이 공존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미술관에도 가고 싶고 극장에도 더 자주 가고 싶고 한자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고 싶은데 늘 게으름이 발목을 잡았다. 삶에 열정은 누구 못지않으면서도 타고난 게으름 또한 워낙에 지독해 언제나 그 둘 사이에서 전쟁하듯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 꼴랑 아파트 앞마당에 나가 바람 쐬는 것조차 귀찮아서 꼼짝을 못하겠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외치면서 결사적으로 움직이려 애를 쓰곤 했다.
'그렇게 귀찮으면 차라리 죽자. 석원아.'


<2인조>에서 여러 이야기를 통해 일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며, 남의 인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 화려하지 않은 평범함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용기를 가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랜 시간 고민의 시간들이 쓰인 문장들은 더욱더 나은 삶을 살고 싶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고 했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건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얘기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이 삶을 잘 살아보고 싶다는 얘기가 아닐까.
나는 잘 살아보고 싶었다. 한 번뿐인 이 삶을. 진짜로 잘.


멋진 어른이 되는 것이 꿈이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부단히도 노력하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책에 쓰여진 많은 이야기들이 내 얘기를 적어놓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아직도 나는 나 자신과 온전히 잘 지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나를 괴롭힌 자기혐오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는 많은 부족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계속 나은 삶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이석원 작가의 말처럼 비록 히어로가 되지도, 딴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충분히 나와 더 잘 지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분명히 생긴다.


책 속의 문장들

나를 증명해보여야 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해. 물론 그조차도 사회적 억압의 일환일 수 있지만 나는 사라옹면서 가장 아깝고 무가치했던 시간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거나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 애를 쓰던 순간들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인에 대해 생각보다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고 여간해서는 그 판단을 바꾸지 않기 떄문이다.
난 비록 아직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고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삶이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되길 바라는 이 마음이 도무지 식지를 않는다는 게 좋아. 스스로 조금 대견한 기분이랄까.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해서 추구하는 바가 있다는게 말야.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고민과 생각들은 결국엔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행복이란 뭘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걸까.
행복은 이처럼 모두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며 나이와 성별, 세대별로도 다른 모습을 띤다. 어릴 적의 행복과 기쁨이 설렘 재미 같은 것들이었다면 어른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주로 감사함과 안도감이 아닐는지. 걱정,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지 않은 대가로 주어지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 이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수백 수천이 있어도, 그래서 내가 이 지구 위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 중 그저 하나의 개체일 뿐이라 해도, 그런 평범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담담함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화단이 그저 평범한 꽃들로 채워진다 해도, 남들 것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그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면 족한 마음. 그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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