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보 Apr 27. 2022

식탁위의고백들_이혜미



맛있게 먹는 일은 즐겁지만 요리하라고 하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안 될까요?

요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즐기지는 않기에 <식탁 위의 고백들> 이라는 제목을 보고 잠시 책상 위에 며칠을 두었다. 그러다가 어제 드디어 첫 장을 펼쳐보았다. 책을 펼치고 마지막 장을 닫기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다. 글로도 맛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당장에 레시피 대로 따라 해 보고 싶었다. 살짝 쿵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요리 여행이라도 떠나야 하나라는 생각도 함께해 보면서.

아보카도, 달래, 당근, 토마토, 샐러드,수란, 복숭아, 자두, 라자냐, 프렌치어니언스프, 리코타치즈, 까눌레라, 마롱글라세 등. 작가는 어렸을 때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두꺼운 책으로 가리고 다녔다고 한다. 타인의 시선보다 글의 시선으로 만나는 일이 조금 더 편했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이후 요리에 흥미를 가지면서 만들고 여러 사람과 나누기 시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해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까. 그녀의 문장에서 깊은 배려와 따뜻하고 고요함이 물씬 느껴진다. 


나의 최애 요리는 무일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런데 너무 많다. 거의 가리는 음식이 없어서 고르

기가 참 힘들다. 어렸을 때에는 가리는 음식이 꽤 많았다. 먼저 매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특히 그 맛있는 떡볶이를 잘 먹지 못했다. 매운 음식 보다는 주로 느끼한 음식을 좋아했던 것 같

다. 특히 치즈가 들어간 음식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했다. 사람의 입맛은 나이가 들

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 틀림이 없다. 매운 음식을 점점 즐겨먹게 되고, 그토록 싫어했던 김치 

요리는 식탁 위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토록 좋아했던 치킨과 피자는 점점 멀리하

게 되게 되다니……



시간이 흐르니 나의 몸도 좋은 음식들을 찾아가고 싶어 하는 걸까. 초록색의 물컹한 아보카도는 

먹을 엄두도 나지 않았었는데 초록색만 보면 입 안으로 넣고 싶다는 생각을 지나치지 못한다. 

보통 4~6개 정도 묶어서 파는 아보카도를 성큼 집어 일주일 내내 그것만 먹기도 한다. 




“반으로 갈리며 터져 나오는 환한 내부의 색.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초록. 뭉개지는 연두. 전염되는 녹색.”
“그림자 속에 깃든 빛의 동굴을 움켜쥐고 새로운 눈동자를 불러온다.
눈뜨라, 시선의 안과 밖이 뒤섞인다.”



계란은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다. 계란 후라이를 주로 먹었었는데 엄마는 항상 흰자 부분을 덜 익혀서 주셨다. 느끼하고 물컹한 그 식감이 싫어 내가 할 때는 그 부분을 특히 신경 쓴다. 가장 쉬운 요리지만 노른자를 터트리지 않고 익히지 않고 흰자만 잘 익히는 것 또한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다. 후라이에서 좀 더 세련된 수란을 먹어보고 반해버려 시도했지만 아직까지는 완벽한 수란을 성공하지는 못했다. 톡 터지며 흘러내리는 그 모습을 보고 싶은데 대신 글로 맛본다. 


“수란을 터트리는 일은 아름답고, 은밀하고, 사랑스럽다.
수란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흘러내리는 마음 같다.
우리의 마음 껍데기는 그만큼 얇고 연약해서,
조금의 손길만으로도 툭 놓치고 만다.
웃음도 눈물도 고여 있다가 끝내 ‘터진다.’”


좋은 글은 독자가 먼저 알아보는 것 같다. 문장 하나로 맛의 향기로움과 달콤함을 흘러내리게 하다니. 입 속에 그 풍미를 가득 채워 출렁거린다. 


“말린 식물들 위에 글자를 적고
 그것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문득 기묘하게 생각된다.
종이 위로 서성이는 나무의 기척,
건두부 위에 포개어지는 생콩의 기억.
그런 고려와 함께 한 권의 먹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볼 것이다.
한 장의 평면이었던 생각에
 겹과 갈피를 만들어 새로운 두께와 부피를 얻으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즐거운퇴사인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