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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 May 01. 2022

#2. 4월 봄이라는 이름


4월. 남들은 ‘4’라는 숫자가 들어가면 싫어한다. 죽음의 숫자라 불길하다고 말하고 병원 건물에는 ‘4’라는 층이 없다. 4월 4일에 태어난 나는 ‘4’라는 숫자를 싫어할 수 없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최근에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을 찾았다. ‘공효진’ 님이었다.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날 태어난 또 하나의 사람은 저렇게 유명한 인사가 되었구나라는 씁쓸함이 마음에 베어 들었다. 


그래도 내 생일이 있는 4월을 사랑한다. 지금이야 생일이 뭐 별거냐라며 ‘기대’를 하지 않지만 초등학생 때는 가장 기다리는 날 중에 하나가 아니던가. 다행히도 내 생일의 기억들은 좋은 기억으로던 꽉 차 있다. 매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면 내 생일이다. 아직 익숙해 지지 않은 반 분위기와 친구들이었지만 초대장을 만들고 쑥스럽지만 친구들에게 건네며 와 달라고 초대를 했다. 생일상에 빠질 수 없는 김밥, 엄마의 특별한 요리였던 삶은 메추리 알과 소시지 꼬치, 간장떡볶이(내가 매운 음식을 먹지 못했다), 케이크, 과자 등으로 채워졌던 걸로 기억한다. 생일 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선물을 뜯어보는 시간일 것이다. 그 시절, 천 원 이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생일 선물은 학용품 세트였다. 입 꼬리가 찢어지도록 좋아했던 그 시간을 간직하려는 듯 놀러 온 친구들과 단체 사진 한 장을 ‘찰칵’ 찍으면 그 날의 생일 잔치는 끝났다. 밖으로 나가 신나게 놀며 그 날 하루쯤은 우리 모두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었다. 


좋은 추억으로 가득한 4월은 아직도 설레게 한다. 한껏 움츠렸던 몸이 서서히 깨어나듯 나른해지기도 하고 꽁꽁 얼었던 몸이 서서히 녹아 제자리를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봄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온다. 비가 내리기 전 비 냄새가 나는 것처럼. 차갑고 코 끝 시리던 바람이 따스한 온도와 뒤섞여 풀 냄새의 향긋함이 섞여있다고 해야 할까. 어찌 봄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마치 겨울이 내 곁에 없었던 것처럼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콧노래를 부르며 밖으로 밖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오늘 분명히 꽃봉오리였는데 눈 떠보면 반쯤 가린 얼굴을 보여주더니 벌써 활짝 펴 버리는 벚꽃들. ‘벚꽃이 피었었나?’ 싶을 정도로 연한 녹색의 새싹들이 그 빈 자리를 치고 올라온다. 겨울 내내 바싹 말라있던 가늘고 긴 여윈 팔을 몇 달 내내 드러내어 놓고 있었던 나무에게도 봄은 빨리 찾아온다. 우리 집 창문에서 보이는 두 개의 큰 두 나무들이 봄의 옷을 입는 속도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앙상해서 너무 안쓰러웠던 두 나무들은 어느 새 연두 빛 옷으로 칭칭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니겠는가. 


만물이 기지개를 피는 순간을 젊었을 때는 알지 못했다. 나 살기 바쁘고 내 감정에만 집중되어있어 주위를 둘러볼 여유로운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뭐가 그렇게 심각하고 고민이 많았던 것인지. 누구도 개의치 않고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는 그들의 꿋꿋함을 알고 느꼈더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까.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이 있고 그 순간이 지나가면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4월이라는 계절은 우리에게 쉽게 봄의 자리를 내어 주지는 않는다. 오늘 따뜻했다가 내일 다시 찬 바람이 온 몸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활짝 꽃봉오리를 피어주다가 그 다음 날 모두 떨어뜨려 화려하고 고운 색깔의 꽃들을 보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변덕의 대가라고 해도 거짓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지나가는 어떤 사람은 패딩 옷을 입기도 했고 그 옆에 사람은 얇은 바바리코트를 입기도 한다. 또 어느 날은 반팔 반바지를 입은 이가 있는가 하면 그 옆에는 스웨터로 약간의 찬 기운도 막겠다는 듯 버티고 있는 이들도 있으니 해님의 볕의 변덕스러움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는 그 다음을 또 맞이해야 하니까.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가는 지금. 시끌벅적한 생일파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제는 조용히 가족들이 모여 한 끼 식사와 케이크로 그 날을 마무리 한다. 4월이 더는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지금은 안다. 3월과 4월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라 겨울의 끝자락을 놔 주기 싫은 누군가가 함박 눈을 내려 보내기도 하고 짙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뒤덮히는 날들이 많다. 고된 추위를 견뎌낸 우리들이 밝고 희망에 가득한 터널을 빠져나가는 것을 시기라도 하는 걸까. 


이제는 봄의 끝자락에 서 있다.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무엇인가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조바심으로 등을 떠밀었던 3,4월. 연두 빛 잎사귀들은 앞으로 더 짙고 깊은 녹색의 향연을 자랑하겠지. 지금 한 창 펴 있는 화려하고 선명한 자태를 뽐내는 철쭉들이 지고 나면 또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잔인한 달 4월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이번 해에도 나의 마음을 천장 끝까지 올려놓았다가 바닥 끝까지 떨어뜨리는 일들을 겪도록 했다.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오색 찬란한 너의 끝자락을 실컷 즐기다가 5월의 푸르름을 맞이할 것이다. 캄캄한 나의 시간들 앞에서 움츠리지 않고 나아갈 거다. 4월, 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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