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살기 위해 읽고 씁니다.”
느슨한 책 읽기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어 독서 계정을 만들고 운영한 지 어느 새 일 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는 다는 기분은 어떨까. 주위에 책을 읽는 사람이 10명 중 1명 정도 밖에 없으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것이 바로 인스타그램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으면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성장을 해 보고 싶었다. 흐트러진 나의 책 읽기 습관을 잡아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권 씩 읽고 서평을 써서 올렸다. 그렇게 100일이 지1000명의 인친님들이 생겨나면서 책 읽기에 탄력이 붙었다. 모든 일이 그런 거 같다. 한 번 길이 들여지면 그렇게 꾸준함이 몸에 베어버린다. 어떤 분은 아이가 셋인데 읽을 시간이 있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맞다. 사실 아이가 셋이라 읽고 서평 쓸 시간을 만드는 일조차 버겁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어도 반 정도 읽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권 읽기가 힘이 든다. 그래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틈틈이 나는 시간 사이로 독서에 매달렸다. 무엇 때문에 책을 읽고 그렇게 매달렸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좋은 책에 대해 나누고 싶었고 나도 다른 이에게 좋은 책을 추천 받고 싶어서 시작을 했던 것 같다. 매번 책을 살 때마다 한 참을 고민하고 샀다. 지금은 읽고 싶은 책을 담아놓은 장바구니가 터질 것 같다. 언제까지 책을 읽어야 다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살기 위해 책을 읽으며 발버둥을 친다. 수면 위에 유유히 떠있는 한 마리의 백조가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물 속에서 땀이 나도록 발을 휘젓고 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그냥 그렇게 시간에 나를 맡겨두면 꼭 나라는 존재가 없어져 버릴 것 같아 무서웠다. 아니 두려웠다. 언제부터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르고 있었던 걸까. 시간은 항상 내 편이고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다고 큰 병에 걸렸거나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은 아니다. 그냥 어느 날, 그렇게 느껴졌다. 우울하고 짜증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이 이어지면서 하루 하루 넘기며 지냈다.
‘마흔 살이 되도록 너는 뭘 했니?’
꽤 오랫동안 성취감을 느끼지 못해서 였을까. 아니면 내 몸을 다 바쳐 키워도 엄마에게 투정을 하는 아이에게 지쳐서 일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반복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불평만 하는 식구들 때문이었을까. 좁은 틀 안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던 내 자신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어도 그래도 무엇인가를 해 보고 싶은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지 않을까. 안정적인 가정인데 배부른 소리를 하지 말라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라는 자존감은 밑바닥을 치고 있었고 점점 예민해져 가는 신경들로 스스로를 옥죄면서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 보내왔다.
사람은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작은 쓸모라도 있어야 삶을 버텨내는 것 같다. 매일 새벽 독서를 인정하는 사람들, 러닝 크루로 건강하게 하려는 사람들, 글을 매일 쓰는 사람들 등 아주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스스로가 목표한 것 하나라도 해 낸 그 하루의 기쁨을 느끼고 싶어한다. 물론 나도 새벽에 무엇인가 하나를 끝내고 시작하면 남은 시간 동안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지 않은 날은 가시가 걸린 듯 잠들 때까지 생각난다.
나를 충만하게 하는 시간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일까. 매일 쓰려고 하고 매일 읽으려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았지만 한다. 읽으면서 생각하고 읽으면서 대화하며 읽으면서 배우고 성장할 길을 찾는다. 손이 가는 대로 쓰면서 내 글이 나에게 건네는 말에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되기도 한다.
오늘도 살기 위해 쓰고 살기 위해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