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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작, 바로 '나'

by 늘보

불안했다. 이대로 나는 잊혀져 가는 걸까.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가 원하던 것을 해 보지 못하고 그냥 두어도 되는 걸까.

물론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시간이 아깝다.

시간을 잡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 미술을 전공했다. 안타깝게도 그 재능을 '주부'라는 이름 뒤에 그대로 묵혀두었다. 엄마에게 다시 일하라고 몇 번 얘기를 했지만 엄마는 항상 현실이...라는 말로 끝을 흐렸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난 그냥 '주부'로 살기 싫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더라도 꼭 일을 할거야! 라는 야심 찬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20대 후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냥 주부였다. 이런 현실에 점점 익숙해질 무렵 큰 아이가 나의 뒷통수를 제대로 때려주었다. "엄마는 아빠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잖아! 엄마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면서 왜 만날 내게 잔소리 하는데!" 라는 외침! 공들여 키워놓았더니 엄마에게 하는 소리가...... 지금도 이런 소리를 하는데 더 이상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잔소리도 귀찮아 할 때가 되면? 나는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겉으로는 어떤 변화도 없는 듯 보였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전쟁 중이었다. 이대로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는지 아닌지...... 잠도 잘 오지 않았고 구인구직 사이트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관찰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뒤늦게 찾아 온 자아 찾기가 시작되었다.


결혼 후, 둘째 임신으로 직장과도 이별을 했다. 나름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만족한 삶을 하고 있었다. 셋째도 얻는 큰 기쁨을 누렸지만 나는 한 자리에 눌러 붙은 먹다 뱉은 껌이 된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아이가 한 명일 때, 두 명일 때 그리고 세 명. 나의 시간은 없었다. 24시간 풀 가동, 언제나 대기하는 아이 구조 대원이 된 기분이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독박 육아의 두려움이 몰려왔다. 두 남자 아이들의 주체할 수 없는 활동력으로 놀이터 생활은 기본. 매일 매일이 아이와 감정 싸움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결혼하고 8년 만인가...... 오로지 나를 위한 아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 것이.


처음에는 아이들이, 남편이 어지르고 간 뒷정리부터 차근차근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저학년인 첫째가 왔다. 간식과 학교 일 등등을 물으며 다시 아이의 엄마로 복귀하고 있으면 둘째, 셋째가 왔다. 아, 나의 아침 시간은 정말 짧았다. 고작 두 시간 정도. 그래도 그렇게 시작한 나의 아침은 아이가 점점 학년이 높아지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첫째가 고학년이 되면 둘째가 저학년이니 마찬가지이기는 하나 그래도 여유 있게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나의 아침 시간은 이제 많아졌고 집안 일도 아무 방해없이 하니 금방 했다. 하지만 오전 일과를 끝내면 멍하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다. 공기처럼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은 제멋대로 흐르고 있었고 내 나이도 붙잡히지 않았다. 혼자 알아서들 나에게서 도망가고 있었다.


'주부'라는 직업도 힘들고 고달프지만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나에게는 우울함을 하나 더 안겨주는 직업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점은 보상과 칭찬이 없다는 거다.


어느 날, 무엇인가 할인을 받기 위해 카드를 하나 만들 일이 있었다. 카드사에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물론 그들은 고객 한 명이라도 더 있기를 원해서였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주부는 무직이었던가?


"고객님, 혹시 고객님 명의로 된 재산이 있으신가요?"

"없는데요."


짧은 통화에 또 한 번 멍해졌다. 아, 사회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존재감이 없는 그냥 '주부'. 아이를 셋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여자.


마음만 조급해지고 짜증만 늘어갔다. 경. 단. 녀.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급히 먹다 체할라!' 단숨에 무엇인가 하고 싶었던 나의 첫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나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무엇을 하고 싶었더라? 무엇을 좋아했더라?'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까지 한 달 남짓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정말 하고 싶고 좋아하는 거 맞나? 라고 질문을 내게 던진다.


나의 시작을 이렇게 시작되었다.


10대 때부터 꾸준히 해 왔던 일은 독서, 기록, 글쓰기 등. 그렇다고 엄청난 양의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놓지 않고 꾸준히 했을 뿐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좋아하는 일이다.

또 셋째를 낳고 시작한 캘리그라피. 이 세 가지 였다. 그래서 시작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활용도 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나의 기록을 남기자!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니까. 내가 숨쉬는 공기처럼, 제멋대로 흘러가는 시간처럼 꾸.준.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말고 내 눈치를 살피며 나에게 관심을 쏟자. 나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는 말자.


일주일에 한 번은 브런치에 글을 쓰고 발행하려고 하고 있고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 리뷰를 캘리그라피로 써서 올리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그 외에 SNS 로 나를 알리고 있다. 많은 사람이 구독하고 좋아요를 누르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씩 나의 글과 나의 글씨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것으로 스스로 칭찬을 하고 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에 나의 발자국을 새기며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야할 이유가 시작되었다.

바로 '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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