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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아이에게 올인하지 않기

by 늘보

8. 인생 아이에게 올인하지 않기


“너하고 싶은 거 다해!”


“나대! 얌전히 있지 말고 막 나대!”


<82년생 김지영> 책과 영화에 나왔던 대사다. 그중 이 대사들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그 시대를 살았던 같은 시대의 여자로서 엄마로서 공감이 되었다. 영화와 책을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를 한참 했다. 여자니까, 엄마니까 해야만 한다는 어떤 의무감에 얽매여 있었고 조금만 벗어나도 나도 모르는 죄책감을 갖고 살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정말 잘 이해해주고 배려해주지만 현실 남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분명 연애할 때 나는 남편이 굉장히 깨어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고 얘기를 잘 나누고 해서 말이 통하는 남자인 줄 착각했던 것이다. '나와 동시대에 동시대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 맞나?' 남편을 보면서 의아해 했었다.


결혼 전에 그냥 여자였을 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거는 다 해보고 살았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했고 책도 읽고 책방이나 도서관도 자주 갔었다. 좋아하는 음악, 텔레비전, 영화도 다 보았고 해외여행은 아니더라도 가고 싶으면 국내 어디라도 가곤 했다. 집에서 살림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었고 내 방에는 입다 벗은 옷 가지들 천지에 방바닥에는 머리카락 지렁이(우리 엄마 표현이다)들이 꿈틀댔다. 집에 들어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컴퓨터, 핸드폰, 샤워, 밥 먹기 그것도 억지로 먹기 등이었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 앞에서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외출하기 전 두 시간 정도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는데 시간을 쓰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결혼 전과 180도 바꾸면 지금의 나, 세 아이 엄마, 내 생활이다. 내가 밥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굶고, 내가 빨래를 하지 않고 정리 정돈을 하지 않으면 집은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리고, 내가 애들을 씻기지 않고 자게 두면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어느새 아프고 꼬질꼬질하고 냄새가 난다. 학교나 유치원 준비물을 챙기지 않으면 매일 같이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을 것이고 집으로 전화가 올 것이다. 내가 아프면 집에 있는 약을 찾아 먹지만 아이가 아프면 들쳐 엎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 내가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시체처럼 누워있으면 아이들도 텔레비전 앞에서 하루 종일 있다. 이 모든 것이 엄마이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투성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나를 묶어 놓고 10년간 세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10년이 흐르면서 남편의 생각도 점점 깨어가고 있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한 아내를 만나 10년 동안 설교와 잔소리를 들은 결과이다. 남자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하는 거라는 내 생각을 남편에게 심어주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확실히 알고 하는 건지 아니면 싸우기 싫어서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내, 엄마로 살면서 ‘나’는 잠시 어디에 두고 사는 것 같다. ‘나’를 알아차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1학년 때는 직장 맘들도 잠시 쉬어야 할 정도로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2학년이 되면서 하교하는 시간도 조금씩 길어지고 아이도 학교 생활에 잘 적응을 했다. 그리고 주위에 엄마들도 하나둘씩 정규직이 아니라도 일을 하거나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작한다.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맨 땅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니까. 이미 나의 경력은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 10년 동안 휴직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주말에 가끔 밖에 나가서 자유시간을 가지라는 남편 말이 반갑기는 하지만 나가면 어디를 가야 할지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사실이 참 서글펐다. 나도 하고 싶었던 것만 했던 사람인데 24시간 동안, 정말 24시간 동안 온 신경을 아이에게 쓰고 살았다니.


나를 찾는 것은 무엇부터 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먼저 나만의 공간, 내 책상을 만들었다. 식탁이 아닌 내 책상.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얘기했다. 내 책상의 것은 만지지 마세요라고. 원래 나는 내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엄마라는 사람도 공부를 할 수 있고 엄마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엄마만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주 얘기하고 보여주었다. 또, ‘엄마 일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지금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준비도 안되어있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일단 말이라도 먼저하면 그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다음 가장 좋아하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나하나 메모지에 적어 보았다. 대충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10가지, 20가지 적어보고 눈으로 확인하는 일을 했다. 적지 않으면 그냥 막연한 꿈일 뿐, 현실이라고 할 수 없다. 내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이 따라야 한다.


이렇게 말을 해 놓고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나라에서 단절 여성을 위한 교육도 들으러 다니고 캘리그라피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운동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가족들에게 나를 말할 필요가 있다. 나를 발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하루는 이미 고등학생, 일반인이 된 자녀를 둔 분이 이런 말을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괜히 애들한테 내 인생을 보냈어!” 스쳐 지나가 듯 들었지만 꽤나 충격적이었다. 굉장히 열정적이고 활달한 분이셨는데 이면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 날 저녁, 아이들과 얘기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크면 엄마 너희에게 기대서 안 살 거야. 엄마도 엄마 인생 살 거고 그때 되면 너희들도 너희 인생 살기 바쁜데 엄마, 아빠 챙기겠어? 엄마는 너희들이 너희들 몫이나 제대로 하고 살면 그걸로 좋아. 그래서 엄마도 지금부터 열심히 엄마 일 찾을 거야.”


지금도 아이들이 공부할 때 나도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으면 엄마 타자 소리를 듣고 놀란다. 엄마가 타자 치는 속도가 미사일을 다다다 쏘는 것 같다며. 둘째는 조용히 와서 묻는다. “엄마 책 낼 거야?” 귀엽다. 그 마음이. 언제 책으로 나올지는 모르지만 “응, 엄마 책 낼 거야.”라고 대답해 버렸다.


아이들도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나 아빠를 분명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외동딸인 친구가 절대 외동으로 키우지 말라고 한다. 자신은 부모가 자기만을 바라보는 그 무게가 너무 힘들었다고. 외동뿐만 아니라 모든 자식들은 같다. 첫째여서 첫째로 살아가는 무게가 있었고 둘째면 둘째로 참아야 하는 일들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았으니 그 책임으로 잘 양육을 해주면 된다. 그 이상 기대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식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나’라는 존재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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