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14."한 숨,쉼을 가져요"

북 캘리그라피 Book Calligraphy

by 늘보

누구보다 ‘잘’하고 있지만, 인생을 ‘잘 보내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기한 없이 떠날 수 있었고, 그렇게 ‘인생 휴학’을 시작했다.

작가는 ‘파란 도시’ 헬싱키와 ‘온도차가 느껴지는’ 탈린으로 떠났다.


이번 2020년. 해외 여행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 가족도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했다. 괜찮아 지겠지, 우리는 가을에 가는 거니까 그 때쯤이면 코로나도 모두 사라질 거야. 하지만 실낱 같았던 기대는 비행기, 숙박 등을 취소하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나는 지금쯤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하며 지도를 찾아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나와 같이 여행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북유럽으로 가볍게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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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정리

해가 뜬다. 하얗게 눈 쌓인 땅을 뚫고 나온 신선한 당근처럼. 참으로 고요하다. 새벽 다섯 시 반, 어딘지 모를 땅 위에 떠 있다. 충분히 잤는데도 아직 절반도 오지 않았다. 보통 장거리 비행에서는 사육당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먹고 자기만 한다.


자도 자도 아직도 비행기 안. 작가의 말대로 자고 일어나면 먹을 것을 주고 또 자고 일어나면 먹을 것을 주니 사육당하면서 기나긴 여행을 하는 기분은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여행지에 곧 도착할거라는 기대감은 그 무엇도 견디게 해 준다.


한정 없이 느린 밤

21시35분, 아직도 밝다. 시차도 있고 백야도 있어서 쉽게 잠들지 못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눕자마자 졸음이 몰려온다. 서두르지 않고 느린 밤을 보냈다.


목적지에 도착!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 시간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고 여행지에서 나는 아무도 아님을 느끼는 순간 ‘야호!’라는 환호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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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리듬

어제와 달라진 구름 한 점 없는 종잡을 수 없는 가을 날씨가 되었다. 서울에서부터 물리적으로 먼 헬싱키에 와 있지만, 이 사실을 깨달을 만한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 무턱대고 반팔을 입고 나섰다가 살결에 스치는 온도가 낯설어 겉옷을 챙겨 입고 찬찬히 걸었다.


오후 네 시 반. 해의 기운을 받아 풀이 짙어지는 시간. 이럴 때면 가볍게 책을 읽고 싶다. 가벼울 때 읽는 가벼운 책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마음에 쌓이므로. 가볍지만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글은 느끼는 것을 그대로 옮겨 담아 자유로운, 표현에 서투름 없는 사람이 쓴 진솔한 글이다.



온도차가 느껴지는 도시

파란 도시 헬싱키에서 두 시간을 달려 온도차가 느껴지는 오시 탈린에 도착했다. 붉은 벽돌 이미지가 강렬한 에스토니아에서 처음 본 트램은 아이러니하게도 블루. 바다를 옆구리에 껴서 인지 환상처럼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나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내가 상상한 여행지가 아니었을 때다. 나의 시간과 비용과 노력으로 이곳까지 왔지만 실망을 안겨다 주는 상상이상의 것들. 하지만 여행이 바로 이런 묘미가 아닌가. 입으로 피식 나오는 웃음을 뒤로한 채 그곳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것.


지지 않는 태양

밖에 돌아다니는 이 없고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니 그간 쉬이 잠들었던 백야가 아쉽다.



짙은 여행

회사를 다니는 몸이라 정신을 반쯤 떼어 놓고 두 발 다 가져가라 내어드릴 수는 없지만, 나눠보기로 했다. 회사를 다니는 나와 그을 쓰는 나. 구태여 어느 하나의 직업으로 규정짓지 않는 삶으로 직업의 의미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졌다. 그 틈은 짙은 여행이 메우고 있다.


여행 에세이라고 해서 결코 가볍게 읽혀지지 않는다. 문장 한 줄 한 줄. 내 마음도 내 생각도 함께 헬싱키에 가 있었다. 항상 동경하던 그 곳에서 나도 내 자신에게 휴식을 주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를 벗어 던지고 나를 잠시 내려놓고 한 숨, 쉼을 가질 수 있는 여행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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