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25. 그 좋았던 시간에

북캘리그라피 Book Calligraphy

by 늘보

#그좋았던시간에 #김소영 #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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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더 먼 곳으로 가.

더 오래 거기서 살다가 와.”


2021년에는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꼭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다. 다시 마음 껏 돌아다닐 날을 기다리며 올해는 유난히도 ‘여행’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을 준비하는 설렘, 공항에 가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해방감. 낯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몰려오는 두려움, 여행하면서 현지인인 척하면서 다른 사람 되어보는 즐거움. 빵 한 조각이라도 여행지에서 먹는 것은 모두 맛있는 건 왜지?


책을 읽다가 문득 김소연 작가가 궁금해졌다. 말레이시아, 페루, 일본, 인도, 베트남, 프랑스, 터키, 그리스, 포루투칼 등. 각각의 나라에서 또 여러 도시를. 여행을 가야 글을 쓰고 집보다 여행지에서 잠을 더 잘 자는 사람. 집 떠나는 즐거움이라는 ‘이가락’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 낯선 곳에서 달라지고 달라질 수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 혼자 배낭 메고 떠나지만 둘이 여행할 때 더 여유가 넘치고 한가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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귈레귈레~

터키 말로 안녕히 가세요라는 뜻이다. 배낭을 메고 나가면서 이층을 올려다보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 모양으로 잘 가라고 ‘귈레귈레’ 내게 인사를 보냈다.

터키에서 나는 길을 잃고 방황한 적이 없었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면 주변 사람들을 불러와서, 내가 길을 제대로 알 때까지 나를 도와주었다. 교통카드 없이 현금만 갖고 버스를 타서 당황했을 때에도, 버스 기사는 괜찮다며 그냥 태워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길을 헤매는 듯한 여행객을 보면 나도 터키 사람이 된다. 길만 가르쳐주지 않고 찾아가고 싶은 그곳까지 데려다 준다.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낯선 이로부터 받은 도움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받은 친절함과 진심은 나중에 나도 똑같이 베푸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니까.


표표하게

나는 사진을 건성으로 찍는 나쁜 버릇이 생겨버렸다. 터키의 에페수스에서 기원전의 도시 위에 서 있었을 때에도, 지중해의 옥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에도, 지난 유월 제주도의 예쁘고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걸을 때에도, 불쑥 고라니가 튀어나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볼 때에도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카메라를 그냥 가방처럼 메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일에는 실컷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되었고,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일에는 한껏 건성인 사람이 되었다.


여행이 끝나고 사진으로 그 때의 추억을 다시 들춰보며 곱씹는 맛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의미가 있지만 가끔 내 눈으로 느낀 것을 내 마음에만 담고 싶을 때도 있다. 이 책의 작가처럼. 그럴 때면 오래 머물면서 두 눈에 한 껏 담아온다. 사진기를 내려놓은 채.


다음엔 더 먼 곳으로 가.

더 오래 거기서 살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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