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캘리그라피 Book Calligraaphy
각 자의 정류장에 각 자의 마음을 담고 간다.
#각자의 정류장 #김현석#남지현#이희영 #뭉클스토리
여러분의 마음에도 기억에 남는 버스가 한 대쯤은 있는지......
내 이십 대는 5500-2번이라는 버스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물론 다른 교통수단과 버스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버스는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멀리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너에게 자유의 방을 줄 테니 오늘을 한 껏 살아봐, 힘들었지? 얼른 집에 가자’.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제2의 휴식처.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은 불안한 나의 이십 대는 네모난 상자 안에서 그렇게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은 세 명의 작가가 공동 집필한 작품이다. 하지만 읽다가 누구의 글이었지? 하면서 자꾸 앞의 글을 보았다. 마치 한 사람이 쓴 글 같았기 때문이다.
조그맣고 파란 책을 받고 심드렁하게 들춰보았다가 눈물 콧물 범벅으로 책을 덮었다. 아이들이 와서 각 티슈 통째로 내게 건네주며 토닥이기까지 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던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읽으며 애써 담담한 척 참고 있던 마음이 터져버린 게 아닐까.
의정부 106번 종로5가 파란 버스.
책 앞에 파란 버스 번호표가 낯설지 않다. 언젠가 한 번쯤은 타 본 것 같았다. 나는 주로 광역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가끔 시내 버스를 타면 '버스'라는 같은 단어도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광역버스는 한 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깊숙하게 나를 파묻고 가기 딱 좋다. 하지만 시내 버스는 사방이 오픈 되어 있어 누가 무엇을 하는지 고개만 들면 민낯이 들어난다. 그들의 민낯을 하나하나 담담하게 책에 담아 주었다.
여섯 개의 정류장. 내가 직접 가 본적도 있고 스쳐지나간 곳도 있다.
광장시장, 마로니에 공원, 미아사거리, 도봉산, 의정부, 창경궁.
각 자의 삶이 가장 고단하고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무심하게 때로는 편견으로 바라보던 남의 인생에도 애환과 고단함이 묻어 있다. 내가 남이 되지 않고서야 감히 그들의 삶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각 자의 삶의 무게를 각 자의 방에 두고 살아가니까.
광장시장에서 백반을 머리에 이고 달렸던 고단하고도 쓸쓸했던 마음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무뚝뚝한 엄마의 마음.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만을 소중하게 여겼다고 생각했던 학생운동가 옛사랑의 진심.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 던져버린 엄마와 10년 만에 재회하는 아들.
지난 날 자신을 버리기 위해 등산을 한 IMF시대 가장의 마음.
토요일마다 맥주 두 캔을 사가는 사연을 가진 여자를 사랑한 군입대를 압 둔 남자의 마음.
순조로운 인생을 살다 두 눈을 잃어버려 좌절했던 한 아이의 엄마.
“장미 백 송이를 다발로 들고 와 한 쪽 무릎을 척 꿇고 하는 말이, 첫눈에 반했는니 너만큼 아름다운 꽃이 없었다느니 하는 입에 발린 말이었다. 그러나 번지르르한 치사 뒤에 덧붙이는 말에, 수경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주자.” – 첫 번째 정류장
“그저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삶에 두 번 없을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시간을 수놓았다. 변 좋은 날에는 밖으로 나가 동숭동 서울대 캠퍼스를 발이 닳도록 걷고 또 걸었다. “ – 두 번째 정류장
누구에게나 남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방 한 개를 마음에 품고 산다. 네모난 상자 안에 나 혼자 앉아있지만 사람의 숨결 또한 느낄 수 있는 곳, 내 삶의 버스는 어디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