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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 Jan 20. 2021

북리뷰28.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

북 캘리그라피 Bookcalligraphy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 #박완서 #세계사


내 마음을 담백하고 따뜻하게 해 주는 글을 읽고 싶을 때 박완서의 책을 선택한다. 더 이상 새로운 글이 나올 수 없어 마음 한 구석이 휑했지만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어찌나 설레던지. 이미 눈으로 마음으로 보았던 글이지만 다시 보니 또 새롭다. 책의 끝자락이 오는 순간이 아까워 천천히 넘겼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이 문장에 오래도록 머물러 본다. 슬프기고 하고 작가의 소망은 이루어진건지 가슴이 저리기도 했다. 왜 이문장이 그토록 잊혀지지가 않을까.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조그만 게 피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뿌리 내린 흙의 저 깊은 속살의 꿋꿋함과 그 조그만 것까지 골고루 사랑한 봄바람의 어질고 부드러운 마음까지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민들레를 좋아한다. 노랗고 조그만 것이 살겠다고 딱딱한 땅에 뿌리르 내리고 굳건히 버티고 솟아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산 나에게 작가의 이 말은 꼭 실천하고 싶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자기 갈 길을 곧고 올바르게 배려심많고 깊은 심성을 가지는 것. 부모가, 집이 마음에서 가장 편안하고 포근한 곳이 되기를 바란다.


정작 내 작품을 읽고 내가 그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듣고 보내오는 편지는 거의 없었다. 나는 많은 편지 속에서 허망감을 짓씹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고독한 작업인가를 알 것 같았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 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 이런 찬란한 시간이 과연 내 생애에서 허락될까. 

자식들에게 젊은이들에게 스스로에게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눈길로 헤아리는 문장들마다 깊게 숨을 쉬고 간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오래오래 그녀의 문장을 곱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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