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유일한 작업자이다.
약 3평의 공간에서 책상 두 개와 기역자로 이어 붙인 작업대 하나를 두고 일한다.
자리에 앉으면 벽 세 개가 나를 에워싸고 정면으로 유리문이 하나 있다.
유리문 밖으로 나와 일이 다른 동료들이 바쁘게 지나다니며 그들의 일을 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입장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업무가 비슷하고 또 공간을 함께 쓰기 때문에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이 쉽다.
혼자 있다 보면 밖에서부터 큰 웃음소리가 터지는 걸 듣게 된다. 그럴 때 묘한 기분을 느낀다.
퇴근을 정각보다 일찍 하게 될 때도 누군가 나를 챙기지 않는다면 나는 나의 일에 몰두해 있다가 남들이 다 간 뒤에 퇴근을 준비하게 된다.
그래서 문득문득 시계를 보고 바깥의 상황을 파악하려 귀를 쫑긋 세운다. 누군가 나를 챙기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기 위해서 이다.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까다로운 작업을 하게 될 때나 날이 더워지거나 습해져서 재료를 유의해 다루어야 할 때, 나는 곤두선다.
하지만 나의 곤두섬은 나밖에 알지 못한다. 나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50%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에 괜스레 분위기 흐리기 싫어 웬만한 일은 혼자서 삭힌다. 그러다 보니 나 혼자 동떨어진 섬에 있는 기분이다.
10 년 이상 이런 외로움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다.
좋은 점도 있다. 그들의 관계구도를 관망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관계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아주 가까웠던 사이가 삐걱대며 그들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면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대해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괜찮을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점이다.
혼자서 a부터 z까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버겁기도 하지만 ‘누가 일을 하네, 안 하네 ‘ 하는 불평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얼마 전에 동료 C와 술약속을 잡고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따로 퇴근을 하고 약속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퇴근을 하는 중 동료 D가 동료 C에게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하는 거였다. 사실 둘은 직장에서 다 아는 단짝 사이였다.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함께 하는 사이였다. (C와 D 둘 다 동성임.)
그런데 C가 나와의 약속을 D에게 알리지 않고 그러자고 하고선 나에게 눈짓을 했다.
그 눈짓이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임을 알아차린 나는 자연스럽게 직장을 빠져나왔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기분이 나를 무겁게 가라앉게 했다.
나는 가끔씩 C와 퇴근 후에 어울리곤 했다. 퇴근 후의 C와 나의 만남은 개인과 개인의 것이었다. 직장의 규율이나 위계 같은 것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관계였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D가 C에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기는(직장에서나 개인적으로나)하지만 퇴근 후의 개인적인 약속까지 감추고 그의 기분을 맞춰야 하는 그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나는 무겁게 하고 서운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일로 인해 관계에 순위매김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와의 선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제칠 만큼, 눈짓으로 양해 한 번 구하면 될 만큼 나는 그녀에게 영향력이 없는 존재라고 그녀가 내게 말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목을 매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런 작은 일들이 나로 마음앓이를 하게 한다.
만약 아들이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나는 어떻게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을까?
내 마음에는 항상 나를 몰아치는 음성이 존재한다.
뭐 이런 것 가지고 그래?
이 목소리가 제법 커서 속상한 마음을 풀어놓기가 쉽지 않다.
이 목소리가 이미 정리를 다 하고서 내게 통보한다.
이제 그 사람이랑은 개인적으로 만나지 마. 직장 사람들이랑 사적으로 엮이지 않는 게 좋다고!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상한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 시절의 어떤 날은 깜짝 놀랄 정도로 세세하게 기억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까마득하고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잘 기억나지 않긴 해도 나는 이런 질문을 잘 못 듣고 자란 사람임이 분명하다.
“정화야, 오늘 무슨 일 있었니?”
그냥 적기만 하는데도 눈물이 핑 도는 이 말이 내게 항상 필요했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듣고 자라지 못해서 나도 나에게 해주지 못하는 말. 어쩌면 나는, 아들에게도 이런 말을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무슨 일 있었니?
하고 누가 물어본다면
또 나는 쉽게 말을 꺼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 말을 듣고 조금 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조금 나아질 것 같다.
옳고 그름으로만 살 수는 없다.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 내 마음을 다 알아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알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에게 자꾸 물어봐 주지 않는다면 있는 마음이 없다고 할 것 같다.
분명히 존재하는 마음이 인정받지 못하면 삐뚤어져 버릴 것 같다.
나는 이제 그것이 제일 두렵고 그렇게 아들의 마음을 대하게 될까 봐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