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없는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시스템 있는 회사는 과연 존재하는가?

by Nini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갈증을 느꼈던 부분은 시스템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거였다. "이놈의 회사는 왜 이렇게 주먹구구식이야?" 구성원이 50, 100, 200... 늘어난다고 해도 시스템 없음 상태에서 시스템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더라. 없는 시스템에 하나씩 덧칠을 해 독특한 구조를 가지게 될 뿐


이직을 하면서 그래도 이 전보다는 큰 회사니까 그래도 시스템이 있겠지 기대했다. 아니 근데 더 없다. 아주 놀랍도록 더 없다. 이 회사 출신 동료들이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이커머스로 나름 큰 회사인데... 게다가 내가 있는 부서는 신사업 조직이라 매출, 데이터, 사내 업무 툴 자체가 거의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있다.


처음 업무를 할 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화가 잔뜩 나있었다. 근데 적응의 동물이라 6개월이 지나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해서 욕하면서 시간을 갈아 넣어서 어찌어찌 또 일하고 있다.


종종 프로젝트 단위로 필요한 기능에 대해서는 정리/제안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어떤 업무가 병목인지 정리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사실 이 과제를 하는 것 자체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실무 하기도 바쁜 데 또 다른 업무가 추가된 거니까.


중요한 일인데 시급하지 않아서 미뤄뒀던 일은 어떤 방식으로는 돌아온다.

그런데 말이 쉽지 업무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다 할 수 있을까?


1. 우선 '업무 개선' 이라는 문서를 하나 만들고 크롬 북마크에 추가해 주었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열어서 쓸 수 있게 접근성을 높여준다. 맨날 생각만 하고 휘발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적지 않으면 날아가 버린다. 머리속에 있는 떠다니는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개선할 수 없다.


2. 내가 생각한 내용을 1차로 작성하고 팀원들에게 집단 지성 발휘를 요청한다. 포맷만 던지는 게 아니라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 적은 몇 가지 내용을 참고할 수 있게 요청하고 데드라인을 달아준다. 이 때 그들이 완벽한 형태로 쓸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 것. 어차피 정리는 내가 한번 더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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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슈가 발행할 때마다 아카이빙 해둔다. 개선/요청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현재 상황과 문제점 그리고 이걸 어느 부서에서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지 적는다. 개선 방향이 나오면 다행인데 사실 개선 방향 자체를 잡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스프레드 시트로 수기로 관리하고 있는데 아예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해야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근데 모든 게 해결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망상이고 일단 현재 사태의 심각성 공유 차원에서 일단 다 적고 나름의 답을 적는 게 중요하다.


대기업 아니고서야 얼마나 착착 맞아 드는 시스템을 가진 회사가 있을까. 아니 오히려 시스템이 있는 회사라는 게 환상이고 허상이다.


없는 시스템에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게 우리의 쓸모가 아닐까. 시스템이 있는 회사를 바라기 보단 내가 만드는 게 훨씬 더 빠를 수 있다. 시스템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업무 시간으로는 절대 안 되고 그 외에 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냥 업무에 파묻혀 버릴 것이냐?


결국 선택의 문제다. 시스템 있는 회사를 찾아 이직을 반복할 것인가,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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