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적다 : 부산

160530-160601 반년만의 바다, 상쾌한 바다내음

by 아멜리아



여 행 의

시 작

내려와, 부산으로.
나에겐 신선한(?) 사람이 필요해.


부산 여행은 친구의 카톡 하나로 시작되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부산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즉흥적인 것도 즐겨보자! 했던 것이라지만 부산으로 훌쩍 떠나기엔 좀, 이유가 어이없긴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뭔가 여행의 시작이 삐걱거렸다.

내가 분명히 타야 하는 건 129호 부산행 KTX. 그런데 전광판에 쓰여있는 대로 8번 플랫폼으로 가니까 웬 진주행 406호가 서있다. 지금 출발하는 열차인가..? 내가 타야 하는 차는 어디 있지? 혹시 전광판을 잘못 봤나 싶어서 계단을 몇 번이나 오가면서 전광판을 다시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플랫폼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한 40명 정도 더 있었다. (ㅋㅋㅋ!!!)

출발 10분 전에야, 승무원 분이 오셔서 "부산 가는 차 맞아요~"라고 말씀해주시고 나서야 우리는 차에 오를 수 있었다. 부산으로 가는 열차는 꽉꽉 찼다.


기차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달렸다


시작은 삐걱거렸지만, 그다음은 정말 순조롭게 풀렸다.

오랜만에 타는 기차.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조금의 낭만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혼자 기차를 탔을 때 가장 재미있는 것은, 내 옆자리에 누가 앉든지 평소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꼭꼭 쌓아두었던 벽이 허물어진다는 점이다.

이번 여행의 내 옆자리에는 태어난 지 막 100일이 지난 아기를 안은 엄마가 탔고, 건너편에는 울산의 집으로 가는 여대생과, 서울에서 제사를 지내고 부산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님이 타셨다. 그렇게 기차는 수많은 사람들의 제각기의 이야기를 싣고 달렸다.


2년 만의 부산역


부산역에 온 것은 2년 만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친구와 내일로 티켓을 끊어서 왔었기 때문에, 새마을호를 타고 와서 시간이 배는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기차에서 푹 잠을 자기도 했고, 시간도 짧게 걸려서 그랬는지 부산역에 도착하고 나서 왠지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 그리고 몰랐는데 부산역은 전도의 성지기도 했다.

우리 학교 캠퍼스 내에도 전도의 열기가 뜨거운데, 나는 왜인지 몰라도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르도록 딱 두 번 밖에 말을 안 걸어주셨더랬다. 그런데 이 날 부산역에서만 두 번 말을 걸어주셨다. 나름 감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나 인상이 더럽지는 않나 봐....!




피 할 수

없 는

먹 방



나를 만나기 위해 전공을 째고 달려온 친구를 만나자마자 한 것은 바로 점심을 먹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부산에 있는 맛있는 음식들 중에 지난번에 맛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 먹고 가보겠다는 기세로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은.

사실 부산의 특산품이라고 할 것들은 많이 못 먹었는데, 그냥 길 가다가 '저거 맛있겠지 않냐..' 싶은 것이 보이면 들어가서 먹어치웠던 것 같다. 여자 둘이 모이면 그릇은 안 깨져도 내 위장은 터질 것 같다.




해 운 대

모 래

축 제



열심히 배를 채우고 간 곳은 해운대였다.

지난번에 해운대를 방문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던지라 바닷가 곳곳에서 버스킹이 이루어지고 어둠이 짙게 깔린 상태였는데, 낮에 바닷가를 찾으니 마음이 탁 트이는 것이 참 좋았다. 바다의 푸른빛은, 정말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날이 해운대 모래축제의 마지막 날이라서 바닷가 곳곳에 모래로 만든 조각상들이 서있었고, 미로 탐험이나 모래썰매 같이 체험할 수 있는 곳들도 많이 있었다. (찾아보니 하루만 일찍 왔으면 저녁때 EDM을 곁들인 신나는 분위기에 몸을 맡길 수도 있었을 뻔했다. 바닷가 클럽이라니. 좀 많이 아쉬웠달까.)

그렇지만 바보같이 우리는 '구멍 숭숭 뚫린 바지'와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때 아닌 모래 샤워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체험은 스킵하기로 했다.


아, 정말 인생에는 이런 날도 있어야지.


대신, 모래축제를 맞아 설치된 북카페 위층 옥상에 있던 선베드에 누워 여유를 만끽했다.

친구랑 나란히, 햇살이 매우 좋은 날에 가만히 누워,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아, 정말 인생에는 이런 날도 있어야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 장 에

가 면


시장을 걷다보면 그 지역의 생활을 보는 것만 같아 기분이 묘하게 좋다


해운대 바닷가에서 나온 우리가 향한 곳은 시장이었다.

시장을 걷다 보면, 그 지역의 생활을 엿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묘하게 좋다. 뭐 그런 이유로 여행에 가면 그 지역의 시장에 한 번쯤 들러보려고 하는데, 지난번에 해운대를 방문했을 때는 부산의 다른 곳도 들러야 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들르지 못해서 약간 아쉬웠는데 친구가 고맙게도 시장으로 이끌어주었다.

이제 우리 동네 시장에서 볼 수 없는 가격부터, 시골 인심과 가까운 부산 도시 인심(?) 까지. 그때 그냥 지나쳤던 꽈배기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 먹을걸.




감 천

골 목 을

걷 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60604142046_0_filter.jpeg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다양한 색채의 마을 전경.


2일 차 일정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감천문화마을이었다.

사실은 다른 곳도 들를 예정이었는데, 미로같이 얽힌 마을 안에서 혼자 다니다가 길을 잃는 바람에 일정을 마구 뺐다.



마을 이곳저곳은, 예쁜 색채로 가득했다.

기울어가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노력한 결과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고개를 돌리면 모두 하나같이 예술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그곳에는 나를 내려보는 인형들이 있었다. 비어있어서 적막하고 황량할 것 같다 싶은 곳 구석구석에 주민들의 손길이 닿아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굳이 사람들이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어린 왕자와 여우 상을 두고 다른 신박한 곳에서 찍을래, 하고 골목골목으로 들어간 덕분에 길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휴대폰 배터리도 죽어가고 있었고. 겨우겨우 내가 감내어울터에 있는 카페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길을 잃은 덕분에 마을 정말 깊숙한 곳에도 주민들의 손길이 닿아 예쁘게 꾸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뒤의 일정은 모두 취소해야 했다. (감천 마을이 그렇게.... 격한 오르막일 줄은 몰랐던 내 잘못도 있는 것 같다) 남포동에 온 김에 쇼핑을 좀 해보자! 했던 나의 포부는 그렇게 안녕.

숙소에 돌아와서, 서면에서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어제 OPS에서 산 슈크림빵이나 우걱우걱 먹으며 에너지 충전을 했더랬다. 난 왜 여행만 가면 기-승-전-먹방인지.




여 행 ,

마 침


사실 이번 여행은 계획에도 없었던 것이고, 부산은 이미 다녀와본 곳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처음부터 기차를 찾아 헤맸어야 했고, 또 감천마을에서는 길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과는 달리 바다를 안고 있는 부산의 매력은 함부로 무시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친구와 함께, 며칠 더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Pictures by Amelia, Sony a5000, 16mm


부산, 생각을 적다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