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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최 Dec 05. 2023

남자 없는 여자들

5. 남자 없는 여자들(1)

 언젠가 남편이 엄마집 마당의 무성한 잡풀을 보고 ‘여자들만 사는 집 티가 난다’고 한 적이 있다. 뭐, 잡풀을 뽑고 잔디 깎는 일을 남자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나는 ‘여자들만 있는 집’이라는 표현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가끔 이렇게 타인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자신이 처한 단순한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때가 있다. 아, 우리는 남자 없는 여자들이었구나.      


외할머니 집을 중심으로 엄마와 이모가 인공위성처럼 그 주변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외가댁 식구들과는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외가댁 식구들이라 해봤자 외할머니와 이모였다. 그곳을 무대라 한다면 남자들은 애초에 부재하거나 잠깐씩 등장하는 조연일 뿐이었다.      


내가 결혼할 때 즈음 미국에서 온다는 할아버지는 알고 보니 할머니와 이혼 같은 오랜 별거 중이었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 미국으로 가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외할아버지를 만날 기회가 한번도 없었다. 아빠와는 직장 문제로 떨어져 산 기간이 더 길었는데 결국 엄마는 이혼 같은 별거를 하며 할머니의 길을 걸었다. 남편 없는 여자의 삶. 셋 중에 유일하게 법적으로 이혼 수속을 마친 이모까지 더하면 남자가 없어지는 마법에라도 걸린 집안인가 싶다.     

 

그래서인지 나는 몇 살이 되면 결혼할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그게 정말 개인이 목표로 설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혼자 생각했다. 결혼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되는데 그 때까지 그 상대를 만들겠다는 얘기인가? 있다가도 없는 게 남자인데 그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성공적인 결혼생활이란 것이 있다면, 주변에 온통 이것에 실패한 사람들만 있었기에 애초에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라든가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주위에 엄마, 아빠의 사이가 좋아 보이는 친구나 아빠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은 친구는 부러웠다. 하지만 그것을 나의 것, 내가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니 그것의 부재에 크게 슬퍼하거나 분노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태어나고 보니 남자가 없는 집안이었고, 있던 남자들도 하나둘 사라졌던 탓에 나에게는 집안의 여자 어른들을 탐색할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졌다. 그녀들은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유전자를 공유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개성이 제각각이었다. 그 틈새에서 무리 없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색을 내세우기보다 하얀 도화지인 편이 나았다. 하늘이 내리고 본능이 인도한 나의 개성은 적당한 무심함과 적당한 거리두기였다. 나는 실제보다 더 무던하게 보였고 실제보다 더 둔감하게 행동했다. 그것은 때로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문제에 대한 나의 방패이자 무기로 쓰였다. 그것이 곧 나의 유리천장이 되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외가 사람들은 집안에서 처음 태어난 아이였던 나에게 방울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나는 집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살던 그 골목에서 방울이라 불렸다. 집안 어른의 관심과 애정을 독차지했던 것과 별개로 여자 어른 셋 중에 누구도 나를 다정하게 안아준다거나 사랑한다고 말해준 적은 없었다. 대신 그들은 나의 별명을 지어주었고, 나의 교육에 관여했으며, 나의 미래를 점쳤다.



*


그래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사람이 있었다.

입학 전까지 나를 돌봐주셨던 제2의 엄마이자 제2의 할머니였던 이쁜이 할머니.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일을 나갔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할머니댁에 맡겨졌다. 반쯤 깬 상태로 포대기에 싸인 채 할머니의 등에 업혀 가던 순간이 기억난다. 나를 업고 갔던 사람은 외할머니가 아니고 외할머니댁 방 한 칸에 세들어 살던 할머니였다. 나는 이 할머니를 이쁜이 할머니라 불렀다. 한참 후에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이란 시를 접하고서 나는 바로 이쁜이 할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두고 두고 유년의 첫사랑으로 기억하고 그리워할 만한 고운 얼굴, 고운 몸짓, 그리고 고운 마음. 이쁜이 할머니는 그렇게 고왔다.


할머니는 기름을 짜야 겠다며 나를 꼬옥 안아주곤 하셨다. 할머니의 등과 가슴과 배는 따스하고 포근한 웅덩이 같았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근심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쁜이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살았는데 할어버지를 나는 ‘함’이라 불렀다. 함의 기다랗고 마른 손가락 사이에는 늘 담배가 들려있었고 다가가면 매캐하면서 구수한 연초향이 풍겼다. 둥그런 할머니와 빼쪽한 함. 사남매를 두고 손주들도 많았던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함은 애정과 신뢰 어린 눈길로 이쁜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이쁜이 할머니가 얼마나 살뜰히 함을 챙겼을지는 직접 보지 못해도 알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최초로 목격한 '성공적인 결혼생활'이었다.(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가끔 결혼한 자식들과 손주들이 놀러 올 때면 나도 그 틈에 끼어 식사를 하고 아이들과 같이 놀곤 했다. 오랜 시간 외동이었던 나는 그런 북적임이 좋아 사람들이 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쁜이 할머니와 함은 내가 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이사를 갔고, 이사를 가고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돌아가셨다. 이쁜이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뒤 따라 가듯 함도 하늘나라에 갔다고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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