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전거와 행복의 상관관계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종로는 좁고 오래된 골목이 문화유산 그 자체인 동네다. 4대 궁궐 외에도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 송강 정철과 겸재 정선의 생가터, 관청의 옛 터, 궁녀들이 빨래를 하던 빨래터, 유관순이 빨래를 했다는 우물터, 윤동주 시인이 하숙을 하던 집이 아무렇지 않게 슥슥 나타나는 이곳을 나는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숨결에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의 변함없는 호쾌한 기운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취향저격’이다.
현재 거주 중인 곳은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배경이 되었던 계곡과 가까워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좁은 골목을 지나 흡사 작은 등산과 같은 언덕 오르기가 필수코스다. 이 좁은 골목을 마을버스와 자동차, 택시, 택배트럭 등 차량과 보행자, 그리고 아주 가끔 보이는 자전거 이용자들이 공유하고 있다. 이 동네에 처음 들어오는 택시기사님들은 놀라움과 경악을 섞어 말씀하시곤 한다. “아니, 인도가 따로 없네요?!”
“그래도 서로 양보하면서 큰 불편함 없이 살아요.”
동네주민으로서, 종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반사적으로 좁은 골목을 옹호하고 만다. 그렇지만 사실 통행이 불편하긴 하다. 보행자 입장에서도, 운전자 입장에서도 말이다. 특히 아이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는 양쪽으로 오가는 차량을 경계하며 이동 내내 아이를 단속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운전자로서 산재한 보행자들과 마주 오는 차량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좁은 골목을 터전으로 삼고 있기에 불편함은 어느덧 익숙해졌고, 그것을 감수하는 일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따뜻해진 날씨에 많은 등산객과 이곳의 문화를 즐기러 온 방문객들, 그리고 주민들과 차량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골목이 포화상태였던 어느 주말. 우리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외출 중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던 아이가 말했다.
- 사람이랑 자동차랑 같은 길로 다니네?
아이의 질문을 듣는 순간 아이가 서울과 얼마 전 다녀온 암스테르담의 거리풍경을 비교하고 있음을 알았다.
- 그렇지? 네덜란드에서는 사람이 다니는 길, 자전거가 길,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잖아. 서울에서는 다 같은 길로 다니지?
- 응, 그리고 자전거도 별로 없어.
- 맞아.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가 엄청 많았잖아.
- 왜 그런 거야?
- 음. 서울에는 작고 큰 언덕이 많아서 자전거로 언덕을 오르내리려면 힘이 많이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어땠지?
- 안 그랬지
- 맞아 네덜란드는 평평했지. 그래서 자전거들이 다니기 쉬워서 많은 거야.
여기까지만 말하고서는 나머지 답도 같이 얘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이는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쓰레기를 버리면 지구가 아프다’는 말을 종종 하던 터였다.
- 그리고 자동차가 다닐 때엔 나쁜 가스가 많이 나오는데 자전거에서는 그런 게 안 나와. 자전거를 많이 타면 지구가 아프지 않거든 그래서 아마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를 많이 탈 거야.
내 말을 들은 아이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다. 암스테르담에서 목격했던 자전거 부대를 떠올리는 중이었을까.
아이와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에 미리 검색해본 정보에 따르면 네덜란드 도로에서 우선순위는 자전거>보행자>자동차일 정도로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많은 편의가 보장된다고 했다.
과연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천국이었다.
암스테르담은 지하철, 버스, 트램, 페리가 다니는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진 도시이지만 높은 요금 탓인지 많은 사람들은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애용한다. 자전거 도로는 인도와 차도 사이에 꽤나 넓은 구획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폭이 보통 인도보다 넓다. 그도 그럴 것이 자전거가 거의 다니지 않거나 어쩌다 자전거 동호회에서 나온 것 같은 복장을 다 갖춰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닐 뿐인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로의 한산한 풍경과 달리 정말 많은 자전거가 그곳을 오가기 때문이다.
실수라도 보행자가 이 자전거 도로를 침범하면 문제가 생긴다. 한소리 듣는 건 문제가 아니고 정말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취미나 여가용이 아니라 제시간에 어딘가 도착하기 위한 목적성을 띤 이동용이라서 암스테르담의 자전거들이 달리는 속도는 기본적으로 빠르다. 게다가 무서울 정도로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전거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 자전거는 어찌나 높고 큰지, 빠르게 달리는 암스테르담의 자전거에 치인다면 작지 않은 부상을 입을 게 분명하다.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아이를 앞이나 뒤에 태우고 달리는 자전거, 일행과 대화하며 나란히 달리는 자전거, 한 손 운전은 기본이고 두 손을 놓고 달리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다. 비가 와도 달린다. 한 두 해 단련한 솜씨가 아니다. 분명 소싯적부터 자전거 타기를 생활화한 결과일 것이다. 집집마다 문 앞에 자전거들이 주차되어 있고 도시 곳곳에 자전거가 무더기로 주차되어 있는 광경도 쉽게 볼 수 있다. 운하보트투어의 진행자가 말하길 자전거를 도둑맞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의 첫 자전거가 생각난다. 11살이었고 태어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아빠의 직장이 위치한 지방의 소도시에 막 이사왔던 참이었다. 이사를 간 집은 가장 높은 층이 5층인 아담한 아파트였다. 우리는 그곳에 약 1년간 머물렀다.
그곳에서 아빠는 내게 초록색 두발 자전거를 사주었고 타는 법을 알려주었다. 한 방향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반대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배운 것도 그 때였다. 두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면서부터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쏘다녔다. 두발 자전거 위에서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꼈을 때의 성취감이란! 두발자전거는 걷는 인간이었던 나를 처음으로 달리는 인간으로 변신시켰다. 공중에 떠 있는 페달을 밟는 느낌, 온 몸에 쏟아지는 바람,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은 두발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모르던 새로운 감각이었다.
초록 자전거에 나의 이니셜을 새기고 아파트 1층에 자전거를 꼭 묶어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하게 보여야 할 자전거가 주차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초록자전거를 훔쳐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하교길에 나의 초록자전거를 우연히 보기 전까지는.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너무나 익숙한 나의 자전거가 눈 앞을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멀리서 봐도 나의 초록자전거가 확실했다. 나보다 나이가 몇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남자애가 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본능처럼 자전거를 쫓아갔다. 달리는 자전거를 어떻게 잡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의문이지만, 쫓아가 그 자전거를 잡았다. 울었던가. 터져나올 것 같은 감정을 감당하며 이건 내 자전거라고, 돌려달라고 얘기했다. 상대는 잡아뗐지만 자전거에 새겨진 내 이니셜은 결정적인 증거였다. 자신보다 어린 여자애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씩씩대며 자전거를 달라고 하니 그 남자애도 어쩔 수 없었나보다. 그렇게 되찾은 자전거를 끌고 집에 왔던 하교길이 있었다.
여러 모습으로 자전거 위에서 달리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보며 나의 첫 자전거를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되찾은 자전거와 언제 어떻게 이별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녹지와 평지가 많던 그 도시를 떠나 자전거와는 자연스레 멀어졌을 것이다. 녹지와 평지가 많은 이곳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자전거는 어린 시절부터의 역사를 함께 한 친구같은 존재가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자전거와 관련된 오래된 추억들이 많을 게 분명하다.
자전거와 함께 했던 그 1년을 찬란했던 유소년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거나 동네 놀이터로 향했고 그곳엔 약속하지 않아도 늘 아이들이 있었다. 모래로 밥과 국을 짓고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 놀다 보면 금세 해가 졌다.
OECD 가입 서구국가들 중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1위, 자전거들의 천국 네덜란드. 자연스럽게 자전거와 행복의 관계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도시 규모
더 많은 신체활동과 더 많은 야외활동
속도나 효율보다는 다른 가치의 추구
이런 요소들이 행복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학교에서 학원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폐쇄된 공간으로 옮겨 다니는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보다 바깥에서 충분히 뛰어노는 아이들이 행복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내가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